연초 엔지니어링업계가 전례 없는 대규모 행정처분 사태로 충격에 빠졌다.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서의 거짓과 부실 작성을 이유로 40여 개 엔지니어링사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면서다. 단일 사안이 아닌 다수 업체에 대한 일괄 행정처분이라는 점에서 업계 전반에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환경부는 제2종 생태조사 과정에서 허위·부실이 발생했다. 이를 외주로 맡긴 제1종 주관사 역시 관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조치가 부실의 결과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부실을 낳은 구조적 원인에 대한 점검은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환경영향평가 제도는 법적으로 제1종과 제2종의 역할이 구분돼 있다. 제1종은 사업 전반을 총괄해 평가서를 작성·제출하고, 제2종은 자연생태 분야의 현장조사부터 분석·평가까지 전 과정을 총괄 수행한다.
문제는 제1종 주관사가 제2종의 현장 조사와 분석 전 과정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거나 검증하는 데에는 제도적·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계절별 반복조사, 광범위한 현장 확인, 종별 판별 등은 전문성과 시간, 인력 투입이 전제돼야 하며, 서류 검토만으로는 완전한 검증이 어렵다는 것이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그럼에도 이번 처분은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부실 발생 결과를 근거로 제1종까지 책임 범위를 확대 적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관리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영역까지 동일한 잣대로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업계가 지목하는 이번 사태의 핵심 원인은 발주 단계의 저가 수주가 아니라 용역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가 재대행 구조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즉 제1종이 발주처로부터 받은 용역비 가운데 실제 현장 조사와 분석을 수행하는 제2종에 지급되는 금액이 구조적으로 낮게 책정되는 관행이 장기간 지속돼 왔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제2종 업무가 원도급 금액의 30~40% 이하 수준으로 재대행되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 이 같은 조건에서는 계절별 반복 조사, 충분한 현장 확인, 인력 투입 등 환경영향평가의 핵심 절차를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일부 평가서의 부실은 특정 업체 문제가 아닌,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어렵게 만드는 가격 구조가 누적된 결과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행정적으로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계약 구조와 대금 지급, ‘돈의 흐름’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제1종과 제2종 간 재대행 계약서, 실제 지급 금액이 확인되는 세금계산서, 원도급 대비 재대행 비율 등은 저가 재대행 구조를 확인할 핵심 자료로 꼽힌다. 특히 환경부 산하기관이 발주한 사업의 계약·집행 내역은 정부 스스로의 관리 책임을 점검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그럼에도 이러한 자료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이 처분 과정에서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게 업계의 주장이다. 부실을 규명하려면 결과는 물론 구조와 과정, 비용 집행의 실체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와 맞물려 환경영향평가 관련 협회 임원 선거를 둘러싼 논란도 거론된다. 협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행정처분 대상에 포함된 회사 소속 인사가 환경부로부터 제도 운영과 관련된 공적 역할을 위탁받은 협회의 회장직에 출마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업계 내부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현재 해당 처분의 적법성을 다투는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해관계자가 업계를 대표하는 자리에 오르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온다. 이는 특정 개인의 자격을 공격하기보다는 정부 위탁기관의 장에게 요구되는 중립성과 책임성 기준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요구로 해석된다.
업계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위법 행위 처벌로만 접근해서는 환경영향평가 제도의 신뢰 회복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제1·2종 간 역할과 책임의 명확화, 저가 재대행 구조에 대한 실태 조사, 계약 및 대금 지급 구조의 투명화 등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누구를 얼마나 처벌할지보다, 왜 이런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이번 사태는 개선의 출발점이 아니라 또 다른 부실을 예고하는 선례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진수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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