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齊(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었으나, 자신의 이념이 실행되지 않자 祿位(녹위)를 반환했다. 제나라 신하 時子는 맹자의 제자 陳臻(진진)을 통해서, 제나라 왕이 맹자를 위해 도성에 집을 마련하고 제자들을 萬鍾(만종)의 녹봉으로 기르겠다는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렸다. 時子의 말을 전해 듣고, 맹자는 ‘내가 부자가 되려 했다면 객경의 녹봉 10만 鍾(종)을 사양하고 1만 종을 받는 일이 부자가 되려는 태도이겠는가?’라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季孫氏(계손씨)의 말을 인용하여, 세간 사람들이 富貴에 연연하는 작태를 비판했다.
季孫은 魯(노)나라 출신의 계손씨인 듯한데, 구체적인 사적은 알 수가 없다. 異는 怪異(괴이)하다는 뜻이다. 子叔疑도 어느 때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계손과 자숙의를 모두 맹자의 제자라고 보기도 한다. 使己爲政은 자기에게 정치를 하게 하다는 말로, 己는 여기서는 자숙의를 가리킨다. 不用은 정치가의 말, 즉 이념이 쓰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卿은 천자나 제후를 보좌하는 사람을 말한다.
不用則亦已矣는 ‘논어’에서 出處行藏(출처행장)에 대해 가르친 뜻과 통한다. 출처행장은 나아가 벼슬하고 물러나 은둔하는 일이다. ‘논어’ ‘子罕(자한)’ 편에 보면 子貢(자공)이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그것을 궤 속에 감춰두겠습니까? 제값 주고 살 상인에게 팔아야 하겠습니까?’라고 하자, 공자는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제값 주고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泰伯(태백)’ 편에서 공자는 ‘천하에 도가 있으면 나가고 도가 없으면 숨어야 한다’고 하여 지식인들에게 時中의 현실 대응을 촉구했다. ‘사기’ ‘孔子世家’에 보면, 노나라 定公(정공)과 季桓子(계환자)가 정치를 소홀히 하자 공자는 나라를 떠나려고 결심하여, 정공이 대부들에게 郊祭(교제)에 바쳤던 희생의 고기를 나누어주지 않자, 재상의 일을 대행하는 자기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노나라를 떠났다. 정의의 말을 실천하지 못하면서 자기 자식에게 부귀를 대물림이나 하겠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정말로 공자나 맹자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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