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말 안되는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저축銀 특위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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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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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
이승헌 정치부
“경제 논리로 말이 안 되는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다.”

9일 오후 국회 저축은행국정조사특위 산하 피해대책소위 회의실. 저축은행 5000만 원 초과 예금자에 대한 피해보상안을 논의하던 한 의원은 기자에게 보상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며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여기는 정치를 논의하는 곳이다. 경제 교과서 이론은 통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소위는 이날 밤까지 회의를 계속해 6000만 원 이하 피해자는 전액 보상해주는 초안을 마련했다. 2억 원까지 전액 보상하는 방안을 만지작거리다 정부의 반대에 부닥치자 그나마 한발 물러선 것이다.

특위는 당초 청문회를 통해 저축은행 사태의 원인을 규명하고 법과 원칙에 근거한 체계적인 피해 보상을 논의하기 위해 구성됐다. 식당이나 세차장 등에서 일하며 푼푼이 모은 피 같은 돈을 날릴 처지에 있는 피해자들의 울음소리에 여야는 이례적으로 별다른 이견 없이 출범에 합의했다.

그러나 청문회 증인 채택을 놓고 한 달 넘게 삐걱대더니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12일 활동 종료를 앞두고 있다. 검찰의 부실수사를 비난해 왔지만 자신들도 아무 할 말이 없게 된 정치권은 편법적인 피해 보상을 졸속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저축은행 피해자가 집중된 부산에 지역구를 둔 특위 소속 의원들은 활동 시한이 다가오자 다급한 마음에 경제 논리조차 무시한 피해 보상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부산이 지역구가 아닌 의원들도 저축은행 피해자 보상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으면 선거에서 손해 볼 리 없다.

사실 이런 결말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여야는 당초 다른 사건과의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피해대책소위에 부산 출신 의원들의 참여를 배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해당 의원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고 소위 멤버 4명 중 2명을 부산 의원(민주당 조경태, 한나라당 이진복 의원)으로 충원한 것이다.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제2의 저축은행 사태를 방비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한 저축은행 국조특위는 이제 어떤 식으로든 피해보상안을 마무리하고 주무 상임위(정무위)로 공을 넘길 것이다. 그리고 특위 소속 의원들은 내년 총선에서 “내가 저축은행 피해 보상에 참여했다”며 표를 달라고 할 것이다. 저축은행 피해보상 문제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국조특위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면서 특위 위원들의 마음속에 진정 저축은행 피해자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내년 총선의 표 계산만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승헌 정치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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