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편지/서명교]외국인이 고맙다며 “아리가토”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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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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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필자는 영국 케임브리지의 몇몇 지인과 조촐한 설날 모임을 가졌는데, 이를 본 외국 친구들이 물었다. “한국도 중국 새해(Chinese New Year)를 따르느냐. 그럼 사자춤도 한국에서 하는 행사인가.” 런던 차이나타운 등에서 열리는 음력설 행사가 많이 알려져 있기에 중국인이 아닌데도 음력설을 쇠는 것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신기해 보였나 보다.

한국인을 자주 접하지 못한 외국 친구들로부터 흔하게 받는 질문이 있다. 상대적으로 일본 중국이 더 많이 알려진 이곳에서 한국은 두 나라와 얼마나 비슷하면서도 다른가에 관한 것이다. 어처구니없던 질문 중 하나는 “한국어가 일본어 또는 중국어와 다른가”였다. 게다가 필자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내 친구 중에 일본인이 있다”거나, “나는 중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등 필자 또는 한국과 별로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말로 대화를 시작하곤 했다. 나 역시 그런 종류의 질문을 은연중에 하고 다녔던 걸 깨달으면서 그네들에게 동북아 3국은 비슷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과정에 있는 아프리카 감비아 출신의 학생을 만나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감비아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느낌으로 “내 친구 중에 탄자니아 출신 친구가 있는데…”라며 대화를 시작했다. 감비아 친구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나중에 지도를 보니 두 나라는 무려 수천 km 떨어진 아주 다른 나라였다. 호의적인 마음으로 대화를 풀어가고자 감비아 친구에게 탄자니아 이야기를 꺼낸 필자나, 한국인인 필자와 대화하려고 자신들에게 더 익숙한 일본, 중국 이야기를 꺼낸 친구들이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소통에 대한 시각이지 지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한국을 왜 모르냐고, 혹은 서로가 서로를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국인으로서 필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례는 많다. 예전에 같이 수업을 듣던 영국 여성이 “아시아 남자는 잘생겼다”라는 말을 했는데 속으로 기분이 괜히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잘 생긴 아시아인’에 한국인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국에서 아시아인이란 보통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계 남아시아인이다. 영국인의 기준으로 필자는 동북아시아인이다. 세계 각국이 자신의 나라를 세계지도의 중앙에 놓듯 필자 역시 아시아란 당연히 동북아를 중심으로 생각해 왔던 것이다.

학교에서 실시한 외국인 학생 설문조사 때도 난감했던 적이 있다. 설문지 개인 정보 가운데 인종(ethnic origin)을 기입하는 문항이 필자의 ‘소속’을 한참 고민하게 했다. 아시아인에는 5개의 범주가 있었는데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중국, 기타(Other Asian background)였다. 자신이 기타 인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어느 곳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시각이 이토록 달라진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 간의 소통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시각의 문제다. 결국 서로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며 소통할 자세가 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잘 모르는 세계 사람들에게 시간을 주자. 동시에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른 나라 사람에 대해서도 시각의 유연성을 키우자. 영국에서, 또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자주 논의되는 다문화 사회란 이러한 시각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서명교 英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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