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왜 고구려史 노리나]<1>한국고대사 전공 전문가 좌담

  • 입력 2003년 12월 1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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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여호규 최광식 전호태 교수. 3명의 교수들은 고구려사 논쟁이 장기전이 될 것이라며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꾸준히 연구역량을 축적해가는 한편 그 연구 업적을 세계에 알리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주기자
왼쪽부터 여호규 최광식 전호태 교수. 3명의 교수들은 고구려사 논쟁이 장기전이 될 것이라며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꾸준히 연구역량을 축적해가는 한편 그 연구 업적을 세계에 알리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주기자
《고구려사는 어느 나라 역사가 될 것인가.

2004년 6월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릴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WHC) 제28차 총회 결과를 앞두고 한국과 중국의 역사학계가 초미의 관심을 쏟고 있다.

내년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올 7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시도했다가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보류된 북한 평양 고구려 고분군에 대한 재심사와 중국이 신청한 지린(吉林)성 지안(集安)현 고구려 유적에 대한 심사 결과가 동시에 발표된다. 유네스코가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는가는 향후 고구려사가 세계사에서 한국과 중국, 어느 쪽으로 귀속될 것인가의 분수령이 된다. 북한의 고구려 유적은 제외되고 중국 것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경우 고구려사는 중국사로 편입될 우려가 높다. 더구나 중국은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기 위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국책사업으로 학술 프로젝트 ‘동북공정(東北工程)’을 2002년 2월 이래 진행해 오고 있다.


중국 지린성 지안현에 있는 고구려의 고분벽화 무용총. -동아일보 자료사진

중국은 왜 한국의 고대사를 앗아가려 하는가. 우경화된 일본의 역사 왜곡에 이어 중국마저 노골적인 신(新)중화주의 정책으로 한반도를 압박해 온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고구려사를 두고 벌어지는 한중간 역사전쟁의 실태와 핵심 쟁점, 그리고 이 논쟁이 갖는 국제정치적 의미를 살피는 기획시리즈를 게재한다. 첫 회에는 한국 고대사 전공 역사학자 3인의 좌담을 통해 중국의 고구려사 흡수 움직임과 그 위협의 심각성을 짚어본다.》

● 中, 北 유사시 개입 명분 될 수도

▽최광식=고구려사가 중국사라는 주장은 1980년대부터 중국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이들은 발해사의 경우 당연히 중국사이고 고구려사도 평양 천도 이전까지는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해 왔어요. 하지만 2002년 2월부터 시작된 학술프로젝트 ‘동북공정’에서는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사까지 중국사라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여호규=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움직임은 동북 지역의 유동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하면서 조선족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북한이 체제 위기에 내몰리면서 동북지역 상황이 매우 유동적으로 변한 겁니다.

▽최=‘동북공정’이 위험한 것은 이것이 역사학자 등 개인 차원의 주장이 아닌 국책사업이라는 점, 그리고 그 제기 시점이 2002년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2001년 북한이 고구려 고분 군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신청한 데 대한 대응 전략이지요.

▽전호태=북한은 벽화고분 등 자국 내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1991년부터 공을 들여왔어요. 일본, 유네스코의 관계자들과 고구려 고분 벽화 조사에 착수해 여러 편의 보고서를 냈죠. 10년간 공들였는데 올 7월 심사 때 중국이 유네스코에 ‘보존상태가 불량하다’는 등의 이유로 이의를 제기해 등록이 보류된 겁니다. 중국은 2004년 여름 지안 일대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고구려사의 중국 귀속 문제는 현실적으로 끝나는 것으로 봅니다. ‘동북공정’은 고구려사의 귀속 문제를 문헌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고요.

▽여=고구려사의 중국사 귀속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발해는 물론 고조선까지 중국사로 귀속됩니다. 우리 민족의 근간을 이룬 종족이 예맥(濊貊)족과 한(韓)족인데 이 중 절반인 예맥족의 역사가, 그리고 우리 역사 활동무대의 절반이 민족사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겁니다. 이는 한국사의 근간이 흔들리는 심각한 문제지요. 중국의 최근 행보를 읽어보면 동북지역뿐 아니라 북한 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까지 주장하려고 합니다. 이는 북한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국이 개입하는 역사적 명분이 될 수 있어요. ‘동북공정’은 남북통일 이후의 국경 분쟁이나 북한의 위기 상황 등 현실적 문제와 깊이 연결돼 있습니다.

▽전=역사의 절반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가 공중분해되는 겁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한반도 남부는 일본의 역사였고 중북부는 중국사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의 우파가 득세해 다시 삼한(三韓)이 일본사라고 주장하면 위아래로 한국의 역사적 근거가 없어지는 겁니다. 조용히 있다가는 중국과 일본이 한국사를 탈취해 역사 주권을 잃는 상황이 발생하지요.

● 세계화시대일수록 자기 정체성 중요

▽최=위기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자면 역사를 과거의 것으로만 생각하고 현재적 의미에 둔감한 것이 문제입니다. 정부도 일반 국민들도 심각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 같군요.

▽전=8·15 광복 직후 일본은 한국사를 일본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 했고 이에 대응해 우리도 국사교육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역사교육을 다시 축소하고 있습니다. 역사교육의 장이 축소되니 연구 역량도 축소되고 한국사 교육 기반이 무너지게 된 겁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역사 주권 침해에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여=일본이나 미국의 신화로 우리자신의 문화 상품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보편적 문화 상품을 판매하려면 자국의 역사나 문화에 기반을 둬야 합니다.

▽전=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버클리대에 1년간 가 있었는데 한인교포들이 한국사를 알고 싶어도 마땅한 책이 없다고 불평하더군요. 한국사는 중국사 책의 한쪽 귀퉁이에 가끔 언급되는 정도더군요.

▽최=세계화 시대일수록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국사를 강조하면 무조건 반세계화, 민족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일국사적 관점을 극복하고 비교사적,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세계사적 보편성과 한국사적 특수성간의 균형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 역사전쟁에서 이기려면

▽여=학계에서는 중국의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를 만들어내야 해요. 그러나 현실은 열악합니다. 중국에서 나오는 자료나 보고서를 학자 개인이 일일이 연락해 수집하고 있습니다. 국내 어디에도 중국의 자료를 체계적 종합적으로 수집하는 기관이 없습니다. 관련 연구자들을 결집시키고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해요. 반면 중국에서는 ‘동북공정’의 하나로 한국과 일본의 연구 성과를 번역해 중국학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어요.

▽최=북한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역사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움직임에 훨씬 큰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 북한과 공조를 이룬다면 좋을 것 같군요. 함께 연구를 하고 고구려 고분 군 관리나 시설 등에서 우리가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전=북한으로서는 고구려사를 잃어버리면 정권수립 후 지금까지 역사연구에 들여온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중국과의 특수한 동맹 관계도 있고 해서 공식적으로 입장 표명을 하기 어려울 거라고 봅니다.

▽여=우리 자신의 연구 성과를 해외에 알리는 데도 소홀히 했어요. 해외 유명 인터넷사이트에서 한국사를 삼국통일 이후 시작된 것으로 소개하고 있을 정도예요. 우리의 연구 성과를 해외에 홍보하는 작업도 중요합니다.

▽전=유럽의 경우 역사적 논란이 있는 부분은 공동 집필해 이견을 해소하고 역사 왜곡 시비를 피해가고 있습니다. 독일과 폴란드,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과 프랑스 등이 역사 교과서를 공동 집필했어요. 유럽의 사례에서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겁니다.

▽최=가칭 ‘한중 역사공동위원회’ 같은 상시적인 협의조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일반적 외교 분쟁이 아니라 명백한 역사 주권 침해이며 장기적인 대책이 요구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동북공정’이란? ▼

중국 동북 지역의 역사와 현황에 관한 대형 학술 과제로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 ‘동북 변강(국경지역)의 역사와 그에 따라 파생되는 현상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프로젝트’로 옮길 수 있다.

동북공정은 중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 중국사회과학원과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 3성이 연합해 추진하는 국책사업으로 2002년 2월 28일 시작됐다. 동북공정의 취지문에는 정치적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중국 동북의 변강지구는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하여 극히 중요한 전략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런 형세 아래 일부 국가의 연구 기구와 학자들이 역사 관계 등의 연구에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고…동북 변강의 역사와 현상에 대한 연구 분야 건설 및 발전을 더욱 촉진시키고 이 지역의 안정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구체적 연구 과제는 동북 지방사 연구, 동북 민족사 연구, 고조선 고구려 발해사 연구, 중-조(中-朝) 관계사 연구, 한반도 정세 변화 및 그에 따른 중국 동북 변강 안정에 대한 영향 연구 등으로 그 중심에 한국이 놓여 있다.

연구비는 5년간 중국 정부에서 1000만위안,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125만위안, 동북 3성에서 375만위안을 조달할 계획. 이는 약 24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동북공정 홈페이지 www.chinaborderland.com (도움말:송기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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