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시절]강호동, 모래판서 씨름하듯 폭소탄 개발 씨름

입력 2001-08-29 18:32수정 2009-09-19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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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 세살 때부터 10년 동안 오직 씨름만 생각했다. 씨름판에서 ‘반항아’로 불리며 하늘같이 보였던 이만기 선배를 물리치고 천하장사에 올랐지만 1993년 본의 아니게 샅바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MBC ‘코미디 동서남북’에 보조 진행자로 나서면서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큰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머감각이 뛰어나다”며 칭찬해 준 이경규 선배 덕분에 개그맨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의욕적으로 시작은 했지만 씨름 선수가 ‘남을 웃기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시청자의 반응은 썰렁한데 나만 재롱을 떨고 있는 건 아닌가’ 고민하며 보낸 시간이 얼마였던가. 다행히 1994년 MBC 코미디대상 우수상을 받으면서 나는 힘을 얻었다.

씨름이나 코미디나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천하장사가 되기 위해 땀을 쏟았던 기억을 되살리며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나만의 다양한 표정을 만드는 노력을 계속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1995년 MBC ‘오늘은 좋은 날’에서 황순원 원작소설을 패러디 한 ‘소나기’였다. 이휘재, 아역배우 강포동과 함께 출연한 나는 춤추듯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동작과, “행님아! 예쁘게 봐 주이소”라는 유행어가 장안의 화제가 되면서 ‘개그맨 강호동’으로 비로소 인정받은 것 같다.

‘소나기’ 촬영 당시 잊지 못할 추억도 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이었지만 가난한 티를 내기 위해 얇은 옷 하나만 입었는가 하면, 얻어맞는 장면에서는 상대방에게 ‘실감나게 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사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연예인이 된 지도 이제 8년째. 아직도 내 손으로 천하장사를 만드는 조련사가 되는 꿈을 꾸곤 한다. 하지만 이제는 희극인 강호동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나도 성공한 인생인 셈이다. ‘코미디 계의 천하장사’가 될 때까지 예쁘게 봐 주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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