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수도권 상습 수해지역 르포]"장마 닥치면…" 조마조마

  • 입력 2001년 6월 22일 18시 32분


22일 오후 경기 용인시 구성읍 보정리 L건설 아파트 단지 내 학교부지 조성 공사 현장. 높이가 100여m 가량 되는 경사면 위에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2개를 짓기 위해 산등성이를 뭉개어 계곡을 메운 상태에서 지반 다지기가 한창이었다.

나무를 베어내 시뻘건 속내를 드러낸 비탈면은 금세 토사가 쏟아져 내릴 듯 아찔해 보였다. 그러나 공사장 옆 마을을 보호할 수방 대책은 구멍이 숭숭 뚫린 분진망 하나씩을 덮어둔 게 고작. 물을 빼는 수로가 나 있기는 했지만 장마철 폭우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주민 김모씨(45)는 “수차례 진정했지만 용인시가 한번이라도 제대로 점검했는지 모르겠다”며 “토사가 무너져 내리면 흙에 깔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상습 수해지역을 중심으로 수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90년만의 봄가뭄으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뭄 극복에 매달려 온 상태에서 체계적인 수방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24일 전국이 장마권에 들게 됐다.

▽개발 현장은 수해 무방비〓지난해 100∼200㎜의 적은 비가 수해를 불러왔던 용인시. 현재 수지와 구성, 기흥 등 용인 서북부지역 3개 취락지구와 5개 택지개발지구, 개별 아파트 공사장 등에 81개 단지 4만9000가구가 건설되고 있어 곳곳이 파헤쳐져 있다. 빗물을 일시적으로 흡수할 녹지는 공사장 사이로 간간이 보일 정도다.

상현지구 내 S중학교 공사현장 근처에 살고 있는 최모씨(53)는 “공사 때문에 개천에 토사를 쌓아놓아 물길이 차단된 곳이 많다”며 “폭우가 내리면 바로 아래 비닐하우수와 논밭으로 흙더미와 바위조각들이 흘러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하수 관정은 지뢰밭〓96년과 99년 수해 때 범람했던 경기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차탄천. 가뭄을 겪던 농민들이 물을 찾기 위해 파놓은 깊이 5m 가량의 웅덩이 수십 개 주변에 고무 호스와 각종 장비가 버려져 있어 원활한 물 흐름을 막고 있다.

주민 정모씨(58)는 “군청이 18일부터 웅덩이를 메우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 앞으로 1주일은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기관의 무관심과 이기주의도 한몫〓경기도청에 따르면 경기 북부지역의 수해상습지 62곳 가운데 개선공사가 진행 중인 곳은 11곳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손도못 대고 있다.

96, 99년에 이어 지난해 세 차례 집중호우로 주택 공장 농경지가 침수됐던 경기 연천군 은대리 차탄천 일대는 높이 12m 가량의 둑을 쌓는 공사가 진행중이지만 장마철이 다가왔는데도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4월 시작된 경기 고양시 덕양구 대장천 하천정비사업. 상류 3.73㎞ 구간의 하천 폭이 12∼18m에서 30m로 시원하게 넓혀져 인근 저지대의 침수우려가 사라졌으나 하류인 대곡 전철역 옆 경의선이 지나가는 윤중교 앞에서 18m로 병목처럼 잘록한 형태로 남아 있다.

고양시와 철도청이 경의선을 복선으로 전철화하면서 고양시 구간을 지하로 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팽팽하게 대치하는 바람에 윤중교 구간의 공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 집중 호우가 내리면 주교동, 토당동, 대장동 등 대장천 중상류 저지대 농경지 70여만평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용인·고양·파주〓남경현·이동영기자>bibulus@donga.com

▼남부지방 장마권…경남-전남 최고 100mm 예상▼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23일 남부지방과 제주도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23일 중부지방은 구름이 많고 곳에 따라 소나기(강수확률 30%)가 내리며 남부지방은 차차 흐려져 많은 비(강수확률 40∼170%)가 오겠다”고 22일 밝혔다.

예상 강수량은 부산 경남과 전남 80∼100㎜, 경북 전북 충청지방 5∼40㎜ 등이다. 한편 22일 장마가 시작된 제주도엔 23일까지 80∼100㎜의 비가 내릴 전망이다.

기상청은 23일 오전 제주도에 호우주의보가, 남해와 동해 전해상에는 23일 폭풍주의보가 각각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또 24∼25일에는 장마전선이 북상해 전국에 걸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 관계자는 “26일까지 달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높아지는 ‘사리’ 현상이 계속되고 서해안과 남해안 제2호 태풍 ‘제비’의 간접 영향권에 들 것으로 예상돼 저지대 주민은 침수에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21일 밤부터 22일 오전까지 서울과 경기 강원 충남 전북지방에 1∼20㎜의 소나기(전북 일부지방은 50㎜ 안팎)가 내렸다.

<김준석기자>kjs35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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