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매거진]파멸로 가는 이정표 '광우병'

입력 2001-03-20 11:52수정 2009-09-21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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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거푸 경신하는 폭설이 내리자 여기 저기에서 부실이 드러난다. 글쓴이가 입주해 있는 싸구려 건물은 옥상의 눈 녹은 물이 장판 아래 스며들어 출렁출렁 고이고 눈 덮였던 도로는 듬성듬성 패였다.

눈은 소외된 농촌마을에도 예외없이 큰 피해를 입혔지만, 농민들의 억장을 무너뜨린 것은 수천만원 농협 빚을 얻어 지은 비닐하우스가 이번 눈으로 거반 뭉개진 일이다.

빚 갚을 길은 막연한데 무너진 비닐하우스를 보수하려면 얼마나 많은 빚을 더 얻어야 하나.

농촌경관을 차갑게 가로막는 비닐하우스는 얼마 전까지 근교농업단지의 특성이었지만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도로가 잘 닦여있는 요즘, 어디에나 지천이다.

계절을 앞선 채소를 남보다 먼저 출하하려는 조급함으로 출발한 비닐하우스는 이젠 농업의 한 분야로 정착한 느낌이다.

돈이 잘 벌린다는 소문을 듣고 너도나도 비닐하우스를 설치하자 어떤 약삭빠른 농부는 연탄난로를 들여놓아 앞서갔지만 그것도 잠시, 얼마안가 비닐하우스 농가는 연탄보일러를 지나 기름보일러를 가동하기 시작했고 , 이제 보일러 없는 비닐하우스는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설비투자가 많은 만큼 높은 소출이 보장되어야 하는 까닭에 마음급한 농부들은 농약과 화학비료로 승부하기 십상인데 환기가 안되는 제한된 공간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거듭 뿌리자 농부들 사이에 하우스병이 만연하고 말았다.

최근 들어 농약에 진저리치던 소비자들이 전통적 무농약 유기농 야채를 선호하기 시작하지만 농부들은 선뜻 관행적 비닐하우스 영농을 뿌리치지 못한다.

자본경쟁이 치열한 영농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도무지 씨앗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약과 화학비료에 찌든 소품종 다량생산의 관행농업과 비닐하우스 영농이 돈을 빨리 챙기고 싶은 인간의 조급증이 몰고 온 우리 농촌의 치명적 역설이자 위기라고 본다면,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로 번져가고 있는 광우병 파동은 돈 욕심 때문에 생긴 세계적 재앙이라 하겠다.

모내기가 끝나 몸이 푸석푸석해질 때면 돼지잡아 마을 잔치하고 사위 찾아와야 닭잡던 시절, 고혈압·동맥경화·신장병·당뇨병·아토피성 피부병 환자가 보기 드물었지만 쇼핑센터가 푸주간을 몰아낸 요즘 사망률 수위를 다투는 흔한 질병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쇠죽 되새김질하던 시절 살붙이같은 집안의 누렁소는 광우병을 모르고 외양간을 지킬 수 있었지만 소팔아 마련한 학자금으로 농과대학에서 박사까지 받은 엘리트가 자영 축산업을 몰아내고 기업 축산업을 옹립하자 느닷없이 광우병이 나타났다.

조급한 욕심으로 소도 사람도 미쳐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광우병은 초식동물인 소에게 육질사료를 먹인 비자연적 축산기술 때문이었다. 6개의 앞니가 아래턱에만 배열된 독특한 치아구조를 가진 소는 자연에서 풀을 뜯어먹기 알맞게 진화된 동물로, 뜯어넘겼던 풀을 다시 입으로 꺼내 되새김질하는 해부학적 특징을 갖는다.

그와 같은 소의 습성을 살이 찌는 속도가 더딘 비효율로 계산하는 과학적 축산은 빠른 기간내에 몸무게를 늘릴 궁리를 찾아냈다.

생명공학으로 만든 소성장호르몬을 주기적으로 투여하는 것과 병행하여 육질사료를 주는 혁신적 방법이었다.

상품성이 없는 양의 내장을 콩과 옥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사료와 잘 배합하여 컨베이어 벨트로 적기 적량 공급하는 컴퓨터 축산시스템이 그것으로, 소의 성장을 생산공정으로 보는 컴퓨터 축산시스템은 어린 뼈가 채 아물기도 전에 몸무게를 잔뜩 불려 발목이 부러져 나갈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몸을 추스르기조차 어렵게 빼곡 채운 밀폐된 축사에서 암모니아가스와 파리·모기로 스트레스를 받은 소들은 질병에 쉽게 감염되지만 먹이를 공급하지 않을 때에 어둡게 불을 꺼두거나 수시로 항생제를 투여하는 과학으로 대처하고, 되새김질(반추)을 못해 안달하지 못하도록 반추위(되새김질하는 짐승의 위)에 수세미를 쑤셔넣는 과학적 폭력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 아뿔사, '스크레피'라 칭하는 일종의 미친양 증후군에 감염된 양의 내장이 들어갈 줄이야. 과학적 축산은 광우병의 원인을 인간의 실수로 분석해가고 있었다.

광우병 대처방식도 나름대로 과학적이었다. 어린 딸을 대동한 영국 농업장관이 햄버거를 맛있게 삼키고 수상이 안전을 화답하는 퍼포먼스도 당시 과학자의 조언이 뒷받침했고, 단지 태어난지 30개월이라는 죄목으로 소각장의 재로 사라진 45만마리의 늙은 소도 과학자들의 권고에 따라 과학적으로 처리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쇠고기를 기피하고 있다는데 이제 과학적 축산정책을 믿고 빚 얻어 투자했던 축산기업이 줄줄이 도산하는 절차만 남은 걸까.

그래도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과학적이어서 다행이다. 감염 물질이라는 프리온이 800도 고온에도 잘 파괴되지 않고 소의 부산물을 재료로 만든 화장품을 바르는 것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는 유럽 과학자들의 경고를 '우리는 방역이 완벽하니 안심하라. 먹지 않으면 괜찮다. 끓여먹으면 된다'는 식으로 일축하는 우리 농정당국은 어떤 과학적 근거를 믿고 저토록 만용일까.

최첨단으로 사육되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과정과 다양성을 경시하는 절름발이 입시 교육으로 청소년들의 균형성장을 들머리부터 저해하는 사회적 병리현상은 또 어떤 사육과정인가.

고등학생은 커녕 중학생·초등학생까지 밀어닥친 입시 교육은 자기 자식의 교과과정이 남보다 앞질러 가야 비로소 안심하지만 남들도 초조하기는 같은 마음이다.

걸음마도 배우지 못한 아기에게 연필부터 쥐어주고 우리 말글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청소년에게 외국 유학이다 해외연수다 가산을 탕진하는 뿌리없는 외국어 교육 백태.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게 붙들어 앉혀놓고 '친구가 아니라 경쟁상대'임을 강조하는 이기적이고도 기형적인 교육열풍 속에서도, 나라 경제의 거품이 꺼지자 상당수의 대학졸업자가 졸지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고, 일자리 못 구한 석사와 박사들이 거리를 헤매고 다녀야 하는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광우병을 일으킨 소의 조기성장 못지않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 조기교육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남보다 빨리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도입한 비닐하우스와 기업형 축산은 내 자식만 생각하는 부모의 삐뚤어진 교육관과 그 맥을 같이한다. 그로 인한 부메랑은 광우병에서 보듯, 자식대에 가서 부정적으로 작용될 것이 틀림없다. 모두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초식동물에게 육질사료를 먹인 자연스럽지 못한 처사로 빚은 광우병은 조급증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의 필연적 병리현상을 단적으로 웅변하는 하나의 지표라고 생각한다. 기득권의 배타적 이득에 충성하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과 지불능력이 충분한 부자들의 수명연장을 현혹하는 생명복제 연구개발은 또 어떤 광우병을 예고할까.

상대방이 칼을 들고 으르렁거린다면 나는 더 큰 칼을 들어야 안전할까. 화해를 시도해야 평화로운 게 아닐까. 비닐하우스, 기업축산, 조기교육 할 것 없이 자연스럽지 못한 속도는 파멸을 향해 가는 이정표가 아닐까. 한계가 분명한 지구촌에서 지속가능 하려면 가장 자연적인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도시나 농촌이나 이웃이 반가운 공동체를 회복하고 제철 제고장 음식으로 자급자족을 추구하는 일, 성인병을 부추기는 과다한 육식보다 채식과 소식으로 식단을 전향적으로 바꿔보는 일,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갯벌 매립보다 보전을 , 다목적댐, 핵발전소, 경인운하보다 이웃과 내 노후와 후손을 위해 재생 및 재활용하고 차라리 적게 쓰는 생활의 지혜를 모으면 어떨까. 스스로 가난해지는 삶은 어떨까. 광란의 20세기를 지난 21세기 정초에 불어닥친 광우병 파고는 우리 인간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파멸로 가는 이정표를 예의 주시하라고.

박병상/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 사무국장 phdlet@hitel.net

(이 글은 환경정의시민연대의 격월간지 '우리와 다음' 3·4월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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