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다이제스트]'로뎀나무 아래서'

  • 입력 1999년 8월 20일 18시 47분


▼ '로뎀나무 아래서'/정찬 지음/문학과지성사 /256쪽/ 6500원

작가는 83년 중편 ‘말의 탑’으로 데뷔했으며 95년 ‘슬픔의 노래’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헤르미네. 헤세의 ‘황야의 이리’에서 주인공 할러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인물. 영채. 유년기에 동생의 사망이 가져다 준 자책감으로 허구의 인물 뒤에 자신을 숨기려 하는 여인. 대학 초년기 내면의 혼란을 겪고 있는 ‘나’에게 헤르미네를 자처하며 다가온다.

언어와 권력, 구원 등 관념적 문제에 천착해 온 작가가 처음 선보인 성장소설 성격의 장편소설. 텍스트에 덧입혀진 수많은 상징들은 읽는 속도를 떨어뜨리지만, 수많은 암시와 실존에 대한 숙고 속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영채의 ‘헤르미네’ 역할놀이에는 어느 틈엔가 ‘나’에 대한 사랑이 덧씌워진다. 그러나, “그녀는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자신의 사랑까지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황야의 이리를 닮아 있었다. 눈앞의 아름다움을 팽개치고 먼 곳으로 손을 뻗는.”

그 먼 곳에는 ‘나’의 ‘신전(神殿)’이었던 제2의 여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채는 눈쌓인 계곡에서 삶을 마감한다.

작가의 최근 단편 ‘베니스에서 죽다’에 등장한 토마스 만의 동명(同名)소설은 이 작품에도 삽입되면서 절대적 미에 대한 세기말적 탐닉을 암시한다.

‘로뎀나무’란 황야에서 자라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는 유일한 나무.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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