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집중진단/미술품감정]눈으로 보고 感으로 짚는다

  • 입력 1999년 7월 12일 19시 25분


『사람이 하는 일인데 실수가 있을 수 있지요.』

최근 위작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였던 천경자화백의 ‘미인도’를 91년 감정했던 당시 화랑협회 감정위원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천경자화백의 ‘미인도’는 아직도 진품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이지만 수많은 작품들에 대한 감정이 100%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털어놓는다.

지난 7일 고미술품을 위조해 유통시킨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람 중 일부가 8일 보석으로 석방됐다. 재판부는 “가짜로 지목된 문제의 그림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불명확해 불구속 상태에서 변론기회를 준다”고 밝혔다.

정확한 미술품 감정은 불가능한 일인가? 최근 미술품관련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정확한 감정’을 위한 제도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감정방법

현재 국내 미술품 감정기관은 두 곳뿐. 현대미술품을 감정하는 한국화랑협회 산하 감정위원회와 한국고미술협회 산하 고미술감정위원회가 바로 그곳이다. 이들 기관의 감정위원들은 대개 육안으로 감정을 한다.특정작가가 즐겨썼던 재료, 캔버스의 종류, 그림에 덧칠을 한 흔적, 붓터치와 전체적인 분위기도 살핀다.

지난 91년 화랑협회가 실시한 천경자의 ‘미인도’감정에는 미술평론가 작가 화랑관계자 등 모두 7명이 참가,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때 천씨는 ▽자신이 그려본 적이 없는 흰꽃이 모델머리에 씌어져 있고 ▽작품제작 연도가 한자가 아닌 아라비아 숫자로 씌어진 점 등을 들어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화랑협회측은 천씨의 작품 중 ▽흰꽃이 그려진 작품 ▽아라비아 숫자로 연대를 표기한 작품이 있음을 들어 반박했다.

한편 고미술품의 경우 각 시대별로 나타나는 대표적이고 특징적인 양식이나 필선, 힘의 강약, 색의 농담을 분석하고 낙관이나 글씨도 살핀다.

◇문제점

▽감정위원들의 주관적인 ‘감(感)’에 의존한다〓감정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릴 경우 결론을 내리기 쉽지 않다. 한 작품을 놓고 위의 두 감정위원회가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까지 대립하면 ‘감정 불능’으로 처리한다.

▽감정결과가 의심될 경우 이를 검증하기 어렵다〓감정기관이 현대미술품과 고미술품분야에서 각각 한 곳뿐이어서 이 곳의 감정결과를 재심사할 수 있는 또다른 감정기관이 없다.

▽과학적 검증이 어렵다〓현대미술품의 경우 X선이나 자외선 현미경검사 등을 통해 그림을 수정한 흔적을 어느 정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과학적 조사도 참고자료일 뿐 절대 기준은 될 수 없다. 그나마 두 감정위원회는 이러한 고가장비를 구비하지 못하고 있다.

고미술품의 경우 첨단 분석기계로도 감정이 어렵다. 과거의 자료가 축적되지 않아 ‘비교자료’가 부족하기 때문. 예를 들어 신라시대 불상임을 증명하려면 신라시대 불상의 양식과 재료 등에 대한 기준자료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라시대 불상에 대한 수천건의 자료를 종합, 재질과 양식에 대한 통계자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이같은 자료가 아직 없다.

◇대책

무엇보다 감정기구가 더 설치돼야 한다. ‘감정독점’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여러 개의 감정기관이 생기면 일단 상호견제와 감시가 이뤄져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차원의 감정기구 설립은 또다른 ‘감정독점’을 낳거나 감정결과가 장사꾼들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많은 학자들의 중론. 대신 국가기관은 각종 자료를 축적, 작품 비교에 필요한 참고자료들을 제공할 수 있다. 이와관련 국립중앙박물관이 앞으로 회화를 중심으로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의 작품 특징을 데이터베이스화할 계획이어서 주목된다.

〈이원홍·이광표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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