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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의 우리거리 읽기]서울 남대문시장

입력 1999-06-14 19:20업데이트 2009-09-24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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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에 붕어가 없는데 도깨비시장에 도깨비는 있으랴. 허튼 몇 마디로는 설명 할 수 없는 곳, 서툰 붓질로 캔버스에 담아낼 수도 없는 곳, 차라리 누군가가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 만들어 냈다고 해야 될 만한 곳, 그곳이 남대문시장이다.

조선시대 대동법은 이 땅의 조세개혁이었다. 모든 세금은 쌀로 통일하여 내게 했다. 전국 각지에서 배로 실어온 쌀은 용산에서 내렸든, 마포에서 내렸든 숭례문으로 들어왔다. 무거운 쌀가마니를 지고 더 멀리까지 갈 필요는 있는가. 선혜청은 숭례문의 바로 안쪽에 자리 잡았다. 쌀을 쌓아두던 창고가 있던 자리는 지금 북창동, 남창동으로 나뉘었다. 성문 밖 칠패 시장과 선혜청 창고는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남창동에 남대문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남대문시장은 도시의 수수께끼. 형태도 경계도 없이 존재하는 도시의 신비. 순대, 족발, 곱창이 등장하는 골목을 돌아서면 안경방, 암달러상, 성인영화전용관이 두서없이 등장하는 곳. 당신은 건빵바지나 쫄바지 말고 맥반석바지나 냉장고바지는 아시는지. 청바지 하나 사면 냉수 한잔 서비스로 드린다는 호의는 받아보셨는지.

이 곳에서는 된장찌개를 먹다 말고 손님을 맞으러 나온 가게 주인도 사장님이고, 고사상에 놓을 돼지머리를 사러 나온 당신도 사장님이다. 처음 보는 얼굴도 바로 언니로 통하는 여기서 우리는 모두 단군의 자손. 남대문시장은 외국 관광객이 들러야 할 코스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진기에 남대문시장이 모두 담기지는 않는다. 남대문시장은 형태가 아니고 흐름이고 소리이고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만원만 내고 고르고 고르라는 그 시끌벅적함이 어찌 사진 한 장에 담길 수 있을까.

경기에는 라이벌이 있어야 한다. 남인수가 있으면 현인이 있고 나훈아가 있으면 남진이 있어야 한다. 남대문시장에도 동대문시장이 있다. 배오개장으로 시작한 동대문시장은 남대문시장의 그늘에 있었다. 남대문시장보다 싼 물건을 덤핑으로 파는 2인자로 남아 있을 것만 같던 동대문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아트프라자, 디자이너클럽, 우노꼬레 등으로 대변되는 서양식 이름의 상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프레야타운, 밀리오레, 두산타워라는 거인들도 등장했다.

새로운 세상은 당연히 새로운 환경을 요구한다. 동네의 구멍가게도 환하게 불을 밝힌 편의점에 자리를 내주는 세상이다. 주인 아주머니의 기억력에 의존해서 물품 값이 매겨지는 상업행위는 경쟁력이 있을 수 없다. 누가 더운 여름날 땀나는 시장에서 말만 시원한 반바지를 사고 싶으랴. 구매집단으로서 미시족이 몰락하고 무서운 십대가 등장했으니 물들인 머리와 스케이트보드의 이미지가 시장 광고에 등장했다. 동대문시장은 남대문시장 뿐 아니고 백화점까지 모두 휘저어 놓기 시작했다.

냉면집 하나를 해도 주차장이 있어야 장사가 되는 세상이 왔다. 기차와 고속버스가 주된 교통수단이던 시절, 남대문시장은 지리적으로 유리했다. 그러나 자가용과 대절한 관광버스가 시장에 몰려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남대문 새벽시장에 온 자동차는 퇴계로, 남대문로를 가득 메우고 심지어는 한국은행앞 분수대까지 주차장으로 바꿔놓았다.그러나 동대문시장은 제대로 된 주차장을 제공했다.

대문시장의 고뇌가 시작되었다. 잃어버린 영화를 되찾자고 남대문시장에도 23층짜리 덩치 큰 건물이 계획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관광명물 남대문시장의 미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번져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존의 논리, 시장의 논리에 구경꾼의 감상이 파고 들어갈 여지는 없었다. 시장은 관광지이기에 앞서 치열한 생존의 각축장이다.

동대문의 거인을 흉내내는 것으로 남대문시장이 전세를 다시 뒤집을 수는 없다. 나훈아를 흉내내면 나훈아를 넘어설 수 없다. 너훈아나 나운아가 될 따름이다. 동대문에 가장 먼저 등장한 프레야타운은 여러 층의 바닥을 그냥 쌓아놓은 수준이다. 최근 완공된 두산타워는 좀 낫다. 건물의 전면에는 광장을 만들어 주말이면 화려한 쇼로 젊은이들을 불러모았다. 어슬렁거리던 인파가 고스란히 건물내부로 흘러 들어가게 만들었고 만남의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두산타워 역시 그 내부는 거대한 상자일 뿐. 각층 바닥을 이리저리 구획해서 분양한 정도다. 건물 내부의 살아있는 에너지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남대문시장은 동대문시장의 이런 모습과 분명 달라야 한다. 동대문시장을 넘어서야 한다.

시장은 흐름이다. 더 많은 물건이 흐르고 더 많은 사람이 모일수록 그 시장은 가치있고 건강하다. 시장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걸어다니는 마네킹. 서로가 서로를 보며 유행을 곁눈질한다. 분양된 상점 사이는 그냥 통로가 아니고 거리가 되어야 한다. 골목, 골목의 곳곳에서는 잠시 앉아 지나가는 마네킹을 구경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여야 한다. 남대문시장은 이런 흐름을 살려내야 한다.

사람이 사람을 부른다. 지하도 좌판에서 머플러를 팔아도 바람잡는 구경꾼이 배치된다. 건물로 번안된 시장은 북적거림을 적극적으로 보여주고 강조하여야 한다. 건축적 장치들이 이를 강조할 수 있다. 움직이는 공간들, 즉 계단,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를 모두 외부에 드러낼 수도 있다. 시장에 들어서는 입구가 하나 뿐이 아니듯 건물에 들어서는 입구도 정신없이 만들어 거리가 건물에 고스란히 스며들게 할 수도 있다. 장사가 잘 되어 사람들이 모이고 거기서 오만가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건물이 건축적으로도 건강하다. 그렇게 활력있는 거리가 아름답다. 남대문시장에 들어서는 새 건물은 수직적으로 쌓인 컨테이너박스가 아니고 세워놓은 거리가 되어야한다. 그런 공간은 새로운 관광지로 자리잡을 수 있다.

남대문시장에 도깨비는 살지 않는다. 그 자체가 거대한 도깨비다. 도깨비도 요즘 세상에 살아 남으려면 정교한 계산을 해야 한다. 무작정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면 방바닥에 상처만 난다. 남대문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를 것인가.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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