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 긴급점검②/핵심中企 현주소]울산 동해밧데리

  • 입력 1998년 9월 28일 19시 22분


“거창한 금융지원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력으로 살겠다는 기업의 숨통은 터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울산 온산공단에서 차량용 배터리를 생산, 전량 수출하는 ㈜동해밧데리. 설비증설에 따른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6월 부도를 낸 동해전지의 임직원 60명이 2억5천만원을 모아 설립한 회사다.

임직원 대표인 김성두(金成斗)전무는 요즘 은행과 리스사를 설득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 지역 P은행이 성업공사에 담보로 잡아놓은 동해전지의 공장건물과 부지의 경매를 의뢰해 놓았기 때문. 동해전지의 설비를 빌려 공장을 돌리고 있는 김전무 등 동해밧데리 임직원들은 채권단의 가동중단 요구만으로도 폐업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속은 썩고 있지만’ 이 회사의 차량용 배터리는 환율폭등으로 해외특수를 맞았다. 7월20일 한달여만에 조업을 재개한 이후 40일 동안 70만달러 어치를 수출했다. 김전무는 “수입신용장을 개설할 수 없어 저렴한 해외원자재(납)를 놔두고 대기업 K사와 현찰거래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충분한 자재물량만 확보되면 60%선인 현 가동률을 100%로 끌어 올려 수출액을 월 1백만달러까지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수출실적이 늘면서 회생 가능성이 보이자 채권단은 물론 심지어 전기 도시가스 업체의 관계자들까지 몰려와 빚잔치를 요구하더군요. 차츰차츰 돈을 갚아가면 회사를 정상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10월중 경매가 이루어질 것으로 알려지면서 김전무는 직원들에게 할 말을 잃었다. 20% 깎인 봉급, 녹은 납을 다뤄야 하는 대표적인 3D업종, 두배나 많아진 작업량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김전무를 따르던 직원들….‘좋은 일자리 찾으면 떠나가라’고 말하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제조업이 없는 은행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지금처럼 무차별적으로 자금을 회수하다간 다같이 망할 뿐입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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