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의 톡톡스크린]"예고편에 속지 말자"

  • 입력 2002년 3월 24일 17시 45분


다음달 개봉하는 ‘재밌는 영화’의 제작사는 최근 이 영화의 ‘예고편’을 무려 500벌이나 찍었답니다. 이는 500개 스크린에서 예고편을 틀겠다는 뜻인데요, 전국 스크린(700여개)의 무려 71%에 해당합니다. 예고편 물량으로는 국내 최다 기록이라는군요. (보통은 200벌 정도랍니다.)

예고편을 붙이는 것은 극장의 권한이지만, 영화사들은 흥행이 잘 되는 영화앞에 붙여달라, 순서도 최대한 본 편 영화에 가깝게 넣어달라, 등 각종 요구와 압력을 넣곤 합니다. 덩치 큰 배급사들은 극장에 영화를 줄 때 다음 영화의 예고편을 ‘끼워 팔기’도 하고요.

영화사들이 예고편에 집착하는 이유는 “예고편 관객이야 말로 영화의 실수요자”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이른바 ‘인 시어터 마케팅’(In-Theater Marketing)인데요, 영화사마다 예고편에 점점 더 많은 돈을 쏟아붓는 추세입니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단순히 영화 장면들을 붙여 예고편을 만들었지만 요즘은 아예 예고편을 위해 별도로 촬영도 합니다. ‘공공의 적’ 예고편에서 형사와 범인이 마주치는 장면,‘버스, 정류장’에서 남녀 주인공이 바다앞에서 만나는 장면은 실제 영화에는 없는 장면이죠.

예고편만 전문으로 제작하는 회사도 5, 6군데나 됩니다. 편당 2500만∼3000만원을 받는다는군요.

영화 예고편도 심의를 거치는데요, 모든 예고편은 ‘전체관람가’로 만들어집니다. 어린이 영화앞에 ‘18세 이상’ 영화의 예고편이 나가도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죠. 이 때문에 대사에 유난히 욕설이 많았던 ‘두사부일체’ 예고편에서는 욕설에 ‘삐리리∼’하는 음향을 덧씌워 내보냈었지요.

결국 예고편은 한마디로 말하면 ‘화장한’ 영화죠. 화장으로 얼굴의 결점을 커버하고 자신있는 곳을 부각시키듯, 예고편은 영화의 약점은 숨기고 가장 멋진 장면만 부각시키니까요.

‘화장발’이 잘 받는 영화로는 특수효과가 많이 들어간 SF나 액션 영화물이 꼽힙니다. 이런 영화들은 대개 드라마가 약한게 흠인데 1, 2분짜리 예고편에서는 이런 점은 감춰지고 화려한 면만 부각되니까요. 몇몇 영화인들에게 “실제 영화보다 포장이 잘 된 예고편을 뽑아달라”고 부탁하자 많은 분들이 ‘화산고’와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꼽은 것도 그런 이유죠.

음... 앞으로 이런 구호가 생겨날 판이군요.

“미팅에선 화장발, 무대에선 조명발, 극장에선 예고발에 속지 말자!”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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