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04>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2일 03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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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며칠 안 돼 해하 서북쪽 벌판에는 30만이 넘는 대군이 한나라의 깃발 아래 모였다. 크게 나누어 한왕이 몸소 이끄는 한군 10만에 한신이 이끄는 제군(齊軍) 10만, 그리고 팽월과 경포가 이끄는 두 갈래 군사가 합쳐 10만이었다. 머릿수로만 본다면 3년 전 한왕이 다섯 제후를 모아 팽성을 칠 때의 56만에 크게 못 미쳤으나 실제의 전력(戰力)으로는 그때와 견줄 바가 아니었다. 그때는 마구잡이로 끌어 모아 머릿수만 부풀린 잡동사니 군대였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한왕이 이끈 10만은 태반이 여러 해에 걸쳐 한왕을 따라다니며 크고 작은 싸움으로 단련된 군사들이었다. 거기다가 관영과 조참을 따라다니며 더욱 단련된 3만과 소하가 오래 조련시켜 보낸 관중의 장정들이 더해져 10만 모두가 정병이라 할 만했다.

다른 세 갈래 군사도 정예하기는 한왕의 본진(本陣)에 뒤지지 않았다. 한신의 10만은 예부터 인재가 많고 물자가 풍부한 땅으로 알려진 제나라에서 뽑은 장정과 물자로 짜인 군사였다. 거기다가 그 대부분은 당대 제일의 병가(兵家)인 한신 밑에서 한 해 가깝게 단련을 받아 이제 한창 싸울 만했다.

팽월의 군사는 대택(大澤)에서 따라나선 젊은이들을 뼈대로 하는 1만에다 양(梁) 땅 스무 남은 성에서 가려 뽑은 장정들로 이루어진 4만을 보태 5만이었다. 나중에 기른 4만은 들쭉날쭉한 데가 있었으나, 그래도 벌써 이태째나 팽월을 따라 초나라 군사를 유격(遊擊)하며 떠도는 동안에 제법 쓸 만한 정병으로 자라 있었다.

이끄는 장수의 갈래가 잡다한 데다 갑자기 군사로 뽑힌 생짜가 많기로는 경포의 군사 5만이 심했다. 주은이 데리고 온 초나라 항병이 1만이요, 노관과 유고가 이끄는 한군이 1만에, 경포가 이끄는 구강병(九江兵) 3만도 그중 2만이 새로 뽑은 군사였다. 하지만 맹장(猛將) 밑에 약졸(弱卒)이 없는 법, 천하의 경포가 그 세 갈래 군사를 모두 틀어쥐고 몰아가니 그 기세는 누구도 감히 얕볼 수 없었다.

전군이 모두 진채를 내리자 한왕 유방이 세 제후와 여러 대장을 모두 자신의 군막 안으로 불러들였다. 군례가 끝나고 각기 자리를 정해 늘어서기 바쁘게 한왕이 제왕(齊王) 한신을 보며 물었다.

“우리가 네 갈래로 군사를 나눠 천천히 온 것은 가만히 해하를 에워싸 초군의 퇴로를 끊은 다음 일시에 힘을 모아 항왕을 사로잡기 위해서였소. 그런데 이렇게 드러내 놓고 대군을 한군데 모으니 과인은 제왕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소. 항왕이 놀라 강동으로 달아나면 어찌할 작정이오?”

“신이 사람을 풀어 알아 보니 항왕은 벌써 한 달 전에 이리로 와 낡은 성곽을 고치는 한편 새로 진채를 세워 두꺼운 방벽과 든든한 보루를 둘렀다 합니다. 거기다가 그동안 흩어져 떠돌던 초나라 군사들을 모아들이고 계포가 다시 3만 대군을 모아 와 이제는 군세도 10만을 일컫게 되었습니다. 항왕의 성품으로 미루어 강동으로 달아날 까닭이 없습니다. 지금은 군세를 둘로 갈라 읍성(邑城)과 진채에 나누어 들어 있는데, 우리가 이른 줄 알면 오히려 먼저 치고 나올 기세입니다.”

한신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한왕은 못내 알 수 없다는 눈치였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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