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따라잡기]여행길엔 따끈따끈한 신간소설 챙기고…

  • 입력 2008년 7월 5일 03시 03분


객지 쓸쓸함 달래줄 시집도 빼선 안되죠

현재 본보에 연재 중인 ‘책 읽는 대한민국’을 기획할 때다. 여행 작가 10명에게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을 꼽아 달라고 부탁했다. “뭐, 쉽게 생각하세요. 그냥 솔직하게 골라주면 돼요.” 다들 친절히 골라줘 절찬리 상영 중이다. 근데 이쯤에서 끼어든 잡상. 난 어떨까. 여행갈 때 무슨 책을 갖고 가나.

웃자고 벌인 상상은 혼자서 죽자고 커졌다. 매일 책장 앞에서 전전긍긍. 마침 러시아 출장까지 닥쳤다. 가방은 안 싼 채 방 안에 온통 책만 어질러놓고. 그러다 번쩍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해줄 책 고르는 기준을 만들어 보자. 마침 인터뷰한 전문가 10명도 있고. 그들을 흉내 낸 ‘나만의 여행도서 선정법’은 이렇게 탄생했다.

첫째, 먼저 여행 주제나 내용에 맞추자. 많은 여행 작가가 애용하는 스타일. 권삼윤 씨가 그리스로 가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을 고르듯이. 장르는 상관없다. 그렇다고 비행기 타며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좀 곤란하고. 그렇게 러시아 출장길에 고른 책은 톨스토이 단편집 ‘크로이체르 소나타’(펭귄클래식코리아)였다. 책에서 읽은 러시아의 거리를 직접 걸었을 땐 우쭐한 기분마저 들었다.

둘째, 평소 좋아하던 책을 지참하자. 박준 씨는 “손닿는 곳에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책을 고르라”고 조언했다. 1년간 출판을 맡으며 팬이 된 작가들을 떠올려봤다. 리처드 도킨스, 올리버 색스, 빌 브라이슨…. 그들의 책은 펼치기도 전에 떨림이 온다. ‘악마의 사도’(바다출판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이마고),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추수밭)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셋째, 따끈한 최신 소설도 한 권 챙기자. 오영욱 씨는 지난해 태국 휴가에 막 출간됐던 백영옥 씨의 소설 ‘스타일’을 들고 갔다. “흥미로운 신간 소설은 여행길 잠자리를 즐겁게 한다”는 게 그의 지론. 시간이 없어 못 읽은 ‘현장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소설 2008’(현대문학)을 집었다. 김연수 박민규 백가흠 등 매력적인 작가의 단편이 그득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남았다. 시집을 한 권 꼭 챙기자. 이병률 씨는 마종기 시인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추천하며 이렇게 말했다.

“기차를 타지 않아도 기차를 탄 듯, 펼치지 않아도 읽는 것 같은 시집. 아픈 것, 따뜻한 것, 쓸쓸한 것들로 온몸이 달궈지는 기분. 하지만 순해지는 기분. 얇은 시집 한 권은 한없이 추울 수도 있었을 여행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래서 선택한 시집이 김중식 시인의 ‘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 상트페테르부르크 노을 앞에서 ‘석양 무렵 황금빛 모서리를 갖는 새는/몸을 쳐서 솟구칠 때마다/금부스러기를 지상에 떨어뜨린다’는 대목을 되뇌었다. 거짓말 살짝 보태 배까지 불러왔다.

물론 여행에 어떤 책을 가져갈진 자기 마음이다. 하지만 짐을 싸며 이 책 저 책을 들었다 놓았다 해보길. 꽤 고민스럽지만 ‘행복한’ 전전긍긍이다. 그리고 함께한 책은 어느새 진짜 여행 친구가 된다.

근데 도대체 몇 권을 가져온 건가. 김연미 씨는 “진짜 읽을 책 한두 권만 챙기라”고 했는데. 이놈의 선정법. 어쩐지 가방이 무겁더라니. 쩝.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