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어른 행세가 하고 싶은 아이는…

  • 입력 2008년 9월 13일 01시 53분


‘왜 나만 따라 해!’ 그림=윤희동, 휴이넘
‘왜 나만 따라 해!’ 그림=윤희동, 휴이넘
고집쟁이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다섯 살에 불과한 이 어린이의 콧대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고집 센 아이가 대부분 그러하듯 이 아이가 가진 목표도 어른 행세를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아이는 모든 욕구를 아버지를 통해서만 충족하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요구한 것은 두발자전거였습니다. 세발자전거도 다루지 못할 나이에 두발자전거는 가당치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기분이 상할까 전전긍긍이던 아버지는 작은 체구에 걸맞은 자전거를 사방으로 수소문하여 구입하였습니다.

물론 아이는 두발자전거를 운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 하여금 자전거를 끌도록 명령하고, 아이는 그 뒤를 따랐습니다. 설령 아버지가 자전거를 운전할 수 있다 해도 아이가 용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물건을 만지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동네의 슈퍼마켓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자전거에 장착된 철제 장바구니에 과자봉지를 가득 채우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렇다 해서 아이가 그 과자를 먹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른이 그랬듯이 아이도 장바구니에는 항상 뭔가가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바구니를 채운 그들은 공원의 산책길로 들어섰습니다. 자전거를 끄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 아버지가 아이 행세를 하는 것 같았고, 아이가 아버지 행세를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는, 어린 아들의 왕고집에 압도되어 수치를 겪는 아버지의 쓰라린 속내가 역력하게 묻어났습니다.

산책 나온 사람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눈치 빠르고 영악했던 아이도 금방 비웃고 있는 행인들의 거동을 눈치 챘습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 안은 자신이 아직 철부지임을 증명하려는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눈엣가시처럼 거슬렸습니다. 아이는 가방과 색연필과 그림책을 꺼내어 씹어 삼키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벽장 속까지 샅샅이 뒤져 자신이 어린이임을 증명하려는 모든 물건을 찾아내 깡그리 먹어 버렸습니다.

방에 들어간 아이가 오랜 시간 아무 기척이 없음을 깨닫고 방문을 열어본 어머니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방안의 광경에 기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바위처럼 커다란 공룡 한 마리가 방바닥에 버티고 앉아 아이의 물건을 어적어적 씹어 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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