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에게 고민 털어놓으려면 그녀의 검지 길이부터 살펴라

  • 입력 2009년 9월 3일 14시 04분


유난히 남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함께 걱정해주던 회사 여자 선배. 어느 날 그녀의 손가락을 봤더니 검지(둘째 손가락)가 유달리 길었다. 한편 자주 불안하고 우울해 보이는 같은 팀 남자 후배의 손가락을 봤더니 약지(넷째 손가락)가 길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거나 우울해 하는 것과 손가락이 무슨 상관이냐고? 앞으로 고민을 털어놓을 상태를 찾으려면 손가락 길이부터 먼저 봐야 할지도 모른다.

용인정신병원 이유상 박사팀은 지난달말 열린 한국심리학회에서 "검지와 약지 길이의 비율에 따라 여러 심리적인 특성이 다르게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검지와 약지 비율을 조사한 연구 결과는 외국에서 많이 나왔으나 우리나라에서 이 비율과 성격적인 특성을 조사해 발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약지 짧은 여성 공감 능력 뛰어나

연구팀은 대학생 160여 명을 대상으로 검지와 약지 길이를 조사했다. 먼저 남녀에 따라 두 손가락 길이의 비율이 조금 다르게 나타났다. 남자는 약지 길이가 상대적으로 긴 반면 여자는 검지가 상대적으로 길었다. 남자의 경우 약지가 10cm, 검지가 9.4cm라면 여자는 약지가 10cm일 때 검지가 9.6cm였다. 이 박사는 "작아 보이지만 통계적으로는 의미가 있는 차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다시 성격적인 특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여성의 경우 검지/약지 비율이 큰 여성일수록 남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즉 둘째 손가락이 넷째 손가락보다 긴 여성일수록 남의 처지에 대해 깊이 동조한다는 뜻이다. 남자의 경우 검지/약지 비율에 따라 이런 성향은 나타나지 않았다.

불안하거나 불안한 정도를 측정하자 이번에는 남자에게서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둘째 손가락이 넷째 손가락보다 긴 남자일수록 우울하거나 불안해하는 면이 늘어난 것이다. 여자에게서는 그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공격성, 인터넷 중독성 등 다른 요소도 측정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검지/약지 비율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궁 속 남성 호르몬이 손가락 길이 좌우

이 박사는 "검지와 약지 손가락 길이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태아가 어떤 호르몬에 많이 노출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밝혔다. 즉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많이 노출되면 약지가 상대적으로 길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검지가 길어지는 것이다. 이런 연구 중 가장 유명한 것이 2000년 3월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마크 브리드러브 교수팀은 "동성애자(게이)는 남성과 여성 모두 검지가 짧고 약지가 길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역시 태아때 자궁에서 남성 호르몬에 많이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그러나 약지가 길다고 동성애자 가능성이 높은 건 아니므로 주의해야 한다. 이밖에도 지난해 1월 영국 노팅엄대 마이클 도허티 교수는 "약지가 검지보다 길면 관절염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관절염과 류마티즘'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이유상 박사는 "여성이 양육 등을 맡으면서 아이 및 배우자와 정서적인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해 공감 능력을 진화시켰을 수 있다"며 "상대방을 이해하는 신경세포로 불리는 거울뉴런이 여성의 뇌에서 남성보다 더 많다는 연구도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동성애, 병 등은 물론 유전자의 영향이 크지만 태아때 노출된 호르몬의 상호작용을 받아 경향이 더욱 커질 수 있다"며 "이 분야를 연구하는 후생유전학이 요즘 많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손가락 길이 비율에 대해 지나치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1998년 이 분야의 연구를 처음 발표한 영국 사우샘스턴대 존 매팅 교수는 "개개인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검지와 약지 비율이 일반적인 경향과 다르다고 해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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