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전쟁은 이젠 그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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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1942년, 석판.
케테 콜비츠,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1942년, 석판.
독일의 위대한 판화가 케테 콜비츠는 전쟁일기(1941년)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철없는 망아지처럼 바깥 구경을 하고 싶어 하는 베를린의 소년들을 한 여자가 저지한다. 늙은 여자는 자신의 외투 속에 소년들을 숨기고서 그 위로 팔을 힘차게 뻗어 감싸고 있다.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이 요구는 막연한 소원이 아니라 명령이다.’

일기는 그대로 그림에 옮겨져 전쟁화의 걸작이 탄생하게 된다.

왜 이 그림을 전쟁화의 걸작이라 부르는 걸까?

전쟁의 잔인함이나 끔찍함, 인간의 야수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도 강력한 반전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세 명의 아이들을 감싸 안고 있는 늙은 여자는 인류의 어머니를 상징한다. 외투자락에 몸을 숨긴 아이들은 전쟁의 공포에 떠는 민중을 의미한다. 콜비츠가 자애롭지만 강인한 어머니의 형상에 비유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까닭이 있다.

그녀 또한 전쟁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콜비츠의 둘째 아들 페터는 1914년, 18세의 나이로 플랑드르에서 전사했고 죽은 자식의 이름을 딴 큰 손자 페터도 1942년 러시아에서 전사했다. 콜비츠는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모든 어미의 슬픔을 이 전쟁화에 담아 애도한 것이다.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의 전쟁일기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첫여름을 고대했던 여린 풀잎들 위로 군화와 포탄 파편이 비처럼 쏟아졌다.

단 한 번도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는 젊은이들이 난생처음 만난 마을 젊은이에게 대검을 휘두르고, 총을 쏘고,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후려갈겼다. …서로 똑같은 몰골을 하고 있으면서도 병사들은 피를 뒤집어쓴 상대방을 악마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인간이 악마가 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콜비츠가 늙은 어머니의 모습을 빌려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한 의도를 알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전쟁은 남자들이 일으킨다. 전쟁게임을 즐기는 철없는 자식들을 향해 ‘전쟁은 이젠 그만!’ 하고 타이를 수 있는 존재가 늙은 어머니 말고 누가 또 있겠는가.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전쟁#전쟁화#케테 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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