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세종시와 충청 출신 대통령

  • 입력 2009년 9월 20일 20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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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세종시 청문회가 될 성싶다. 야당은 세종시 문제와 총리 인준을 연계시킬 계획이어서 이틀 동안의 청문회와 인준투표에서 세종시의 효율성을 둘러싸고 뜨거운 공방이 예상된다.

한 충남 출신 인사는 요즘 동향 모임에 가면 두 가지가 주 화제라고 전했다. 하나는 충청도에서 직선 대통령이 한 명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4대 윤보선 대통령은 충남 아산 출신이긴 하지만 내각책임제 정부의 상징적 대통령에 그쳤다. 충남 출신 대통령 후보였던 김종필 이인제 이회창 씨는 번번이 8분 능선에서 고배를 들어 안타까움을 남겼다. 두 번째는 세종시 건설을 통해 충청권이 비약적인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 총리 후보자는 총리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나면 강력한 대권 후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두루 갖추고 있다. 정 총리 후보자를 초청한 대전·충남 출신 명사모임에서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은 “정 후보자는 총리로 그칠 분이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그런데 정 총리 후보자는 충청인들의 여망을 실현시킬 여건을 갖추고 있지만 세종시와 관련해서는 자유선진당과 다른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인사청문특위에 제출한 서면답변서를 통해 “세종시는 사업이 많이 진행된 것으로 알지만 행정 비효율 등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언터처블’ 세종시의 미묘한 변화

2002년 대선에서 충남 예산이 연고지인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해 분루를 삼킨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세종시의 원조 격인 수도 이전 문제였다. 이 자유선진당 총재는 지금 ‘세종시 원안대로 건설’의 선두에 서 있지만 2002년 대선 때는 주변에서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수도 이전 반대’ 원칙을 고수했다.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씨 등 한나라당 대선후보군은 2007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시기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하나둘 세종시에 관한 태도를 바꾸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한나라당 대권후보군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의원 시절부터 초지일관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고 있다. 김 지사는 17일 ‘철도포럼’ 초청 특강에서 세종시에 관한 질문을 받고 “세계 어느 나라에 행정부처를 네 군데(서울 대전 과천 세종시)로 쪼개놓은 사례가 있느냐”며 “세종시는 선거 때 표 얻으려고 시작된 아주 잘못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완구 충남지사는 이런 김 지사를 향해 “누구든 세종시 문제를 언급하려면 정치적 운명을 걸고, 그 후유증에 대해서도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지사의 발언은 모든 대권후보군에 대해 2002년 이회창 후보의 패배를 상기하라는 엄포처럼 들린다.

정치권에서 ‘언터처블(건드릴 수 없는 대상)’이 돼가던 세종시 문제에서 최근 심상찮은 변화의 흐름이 감지된다. 원로지식인 1200명이 세종시 계획 수정을 요구하는 선언을 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16일 이 대통령과의 단독 회동을 마치고 “세종시 얘기도 있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병석에 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오랜 침묵을 깨고 “나도 누워서 구경만 할 사태는 아닌 것 같아 한마디해야겠다”고 나섰다. 그는 “행정부가 네 곳으로 분산되는 것은 걱정스럽지만 이 대통령이 여섯 차례나 세종시를 원안대로 건설하기로 약속했다”며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김 전 총재나 김 경기지사 그리고 정 총리 후보자가 걱정하는 것처럼 세종시로 정부청사가 이전할 경우 그 비효율은 정부과천청사의 몇 배가 될 것이다. 정부과천청사의 장관들은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서 가까운 세종로에 별도의 사무실을 운영한다. 힘센 장관들은 여의도에 사무실을 하나 더 두고 있다. 세종시로 내려가는 주요 부처의 장관이나 실국장 과장들은 국회와 청와대 각종 회의에 참석하다 보면 1년 중 절반 이상을 서울에 묵어야 할 판이다. 그러다보면 서울사무실이 세종시 본부보다 더 커질 것이다.

행정수도는 국가 백년대계

큰 기업이 있어야 주민의 소득이 높아지고 지역이 발전한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높은 울산 포항 거제 창원 광양 같은 도시를 보면 안다. 충남 주민 중에도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공무원들보다는 기업이 들어와 근로자를 많이 채용하는 것이 지역발전에 훨씬 낫다”는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전의 대덕연구단지, KAIST와 연계해 세종시를 첨단기업도시로 만든다면 국토의 균형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출신지역과 거주지를 떠나서 무엇이 대한민국과 충남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길인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다보면 접점(接點)을 찾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 총리 후보자가 이런 조정의 중심에 서야 할 것이고, 그에게 거는 국민의 기대가 크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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