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병규]한국 경제, 수렁의 갈림길에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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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한국 경제에 ‘4저(低)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저성장, 저금리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저물가, 저환율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4저 현상은 국내 경제가 안고 있는 복합적인 문제점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단 국내 경제의 경기 복원력이 상실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4低 현상’으로 복합 불황 우려

금리가 낮은데도 갈수록 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은 국내 경제의 성장 탄력성이 크게 약화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국내 경제에서 거시적 경기 대책의 실효성이 약해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금리가 낮은데도 물가 역시 하락하는 것은 국내 경제가 저물가 속에 경기 침체가 깊어지는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는 불안감을 높여준다.

한편 경기 침체 골이 깊은데 환율 가치가 상승하는 저환율 추세가 지속되는 것은 국내 경제의 내·외수 부문 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저성장 속 저금리 상황은 국내 금융업이 수익성 악화로 경영 부실이 빠르게 확대될 위험도 증대시킨다.

앞으로 4저 현상이 계속된다면 최악의 경우 내수 부진 심화로 국내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까지 초래할 수 있다. 만일 이런 사태에까지 직면한다면 한국 경제는 실물과 금융 부문의 복합 불황이 초래돼 일본과 같은 장기 저성장 시대로 추락할 수 있다.

확산되고 있는 4저 현상은 한마디로 한국 경제의 체력이 소진되고 혈액순환도 원활치 못해 기력이 급격히 쇠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경제는 이처럼 저성장→저금리→저물가(저환율)→저성장이 반복되는 ‘4저의 악순환’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지느냐 마느냐라는 매우 절박한 갈림길에 봉착해 있다. 한국 경제가 다시금 원기를 회복하고 성장 활력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저금리, 저환율 여건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경영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저금리, 저환율 현상은 국내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투자비용이 그만큼 절감되는 까닭이다. 최상의 투자 여건 속에서도 기업이 투자를 망설이는 것은 경영여건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다가올 2013년의 대내외 경영환경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만큼이나 열악할 것으로 걱정된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재정 파산 위험이 상존하고 중국 역시 경기 조정 국면이 이어져 세계 경기의 부진 양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내적으로는 가계부채 부담이 가중되고 부동산 경기도 수요 부진에 의한 침체 양상이 깊어질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게다가 새해에는 정부 정책으로 인한 경영 위험 요인도 도사리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경제민주화를 비현실적으로 강도 높게 추진한다면, 기업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한 투자 방안을 강구하기보다는 모든 가용자원을 경영권 방어에 활용하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투자-혁신-시장확대 정책 서둘러야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를 통해 어려운 국내외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실질적으로 투자 제한적 규제들을 제거하는 동시에 반(反)기업 정책을 최대한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저환율 지속에 따르는 원화 강세 시대를 대비한 경제 체질 개선 노력도 절실히 요구된다. 정부는 물론 기업에서도 연구개발 투자와 혁신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또 한국의 소규모 내수시장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 빠르게 성장하는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소비자를 국내로 유입하는 시장 확대 정책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국내 경제의 4저 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투자, 혁신, 시장 확대라는 3대 정책을 하루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한국 경제#경제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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