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규섭]‘오보(誤報) 이후’ 한국과 외국의 차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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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과학적 검정(檢定)에는 ‘제1종 오류’와 ‘제2종 오류’라는 개념이 있다. ‘제1종 오류’는 잘못된 데이터를 근거로 연구자의 잘못된 가설이 채택되는 것이고 ‘제2종 오류’는 가설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데이터가 약해 채택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과학적 검정과정은 ‘제1종 오류’를 ‘제2종 오류’보다 더 심각하게 간주하는데 연구자에게 좀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책임지는 모습 보인 英-日언론

저널리즘도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과학적 검정과정과 일맥상통한다. 저널리즘적 발견에도 ‘제1종 오류’를 최소화하려는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한국의 언론에는 이러한 의식이 희박해졌다. 특히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라는 미명 아래 오보(誤報)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인식이 언론에 팽배해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오보는 특종과 속보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실관계 확인에 소홀한 채 보도를 서두르다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뉴스 미디어 산업의 채산성 악화로 언론사 간의 경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여기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수준 미달의 인터넷 매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다 보니 책임 있는 언론들도 좀 더 자극적인 내용을 독점 보도하려는 욕심이 앞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누구든지 거짓 정보를 유통시킬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이 조성되어 특종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연구업적 부담으로 과학자들이 ‘제1종 오류’의 유혹에 빠지는 것과 같은 이유다.

한국에서는 오보에 대해 언론과 뉴스 수용자 모두 놀라울 정도로 관용적인 태도를 가진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과거 독재정권을 경험하다 보니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는 집단 피해의식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지난주 세계 유수 언론사의 고위 관계자들이 잇달아 오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일이 일어났다. 일본 아사히신문 계열의 주간지 ‘주간 아사히’는 10월 26일자에서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일본 오사카 시장의 부친이 천민 출신의 자살한 야쿠자 출신”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주간 아사히를 발행하는 아사히신문출판사 사장이 “인권의식이 결여된 부정확한 보도였다”고 인정한 뒤 이달 12일 사의를 표했다. 해당 주간지 편집장도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이달 10일에는 영국 공영방송 BBC의 조지 엔트위슬 사장도 오보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BBC 간판 프로 중 하나인 ‘뉴스나이트’가 한 남성이 1980년대 어린이 보호시설에서 보수당의 고위급 인사에 의해 반복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인터뷰를 방송했는데 결국 오보로 밝혀졌다. 엄격하게 말하면 사장이 직접 뉴스를 취재하고 제작하고 편성하지는 않기 때문에 해당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엔트위슬 사장은 “‘뉴스나이트’ 보도는 저널리즘 기준에 어긋났다. BBC는 ‘신뢰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인정하며 취임 54일 만에 사임했다. 외국 언론사들의 이러한 책임 있는 태도를 접하면서 우리 오보의 잣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팩트’ 외면, 저널리즘 아니다

다시 선거철이다. 겨우 한 달 정도의 기간에 너무나도 중요한 뉴스들이 넘쳐나는 시기다. 선거는 박빙이고 기사 하나가 선거 결과를 가를 수도 있다. 또 설사 오보로 밝혀져도 선거가 끝나면 묻혀버릴 가능성이 높다. 특종과 속보의 유혹이 극에 달하는 이유다.

과학적 발견의 신뢰성이 엄격한 잣대를 고수해야 유지될 수 있듯이 한국 저널리즘의 생존을 위해 오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 더구나 특정한 목적을 위해 주장과 선동을 앞세우며 엄격한 팩트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진정한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없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오보#언론#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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