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 40주년]<1>佛 사르코지 대통령의 도전

  • 입력 2008년 1월 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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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반대” 40년 만에 달라진 분위기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소중한 자유’ 모임 회원들이 ‘파업을 멈추라’는 구호가 적힌 푯말을 들고 대중교통 노조 등이 일으킨 파업에 반대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파업 반대” 40년 만에 달라진 분위기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소중한 자유’ 모임 회원들이 ‘파업을 멈추라’는 구호가 적힌 푯말을 들고 대중교통 노조 등이 일으킨 파업에 반대하며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佛-美-日휩쓸었던 “차별철폐” 시위… 그들의 가치는 유효한가▼

올해는 1968년 서구사회 전체를 뒤흔든 68혁명이 일어난 지 40년이 되는 해다.

프랑스에서 시위의 영향은 나라 전체를 뒤흔들 만큼 컸다. 그해 3월 대학생 8명이 미국의 베트남 공습에 항의해 아메리카 엑스프레스 파리 사무실을 습격했다가 체포되자 학생들은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낭테르대 본부를 점거했다. 5월 들어 학생 시위에 노동자 총파업까지 가세해 한 달 이상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샤를 드골 대통령이 국민에게 신임을 묻기 위해 의회를 해산하고 6월에 총선거를 실시해 대승을 거두면서 혁명의 불길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해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반전(反戰)과 기성 제도의 해체를 내세운 시위가 잇따랐다. 프랑스의 5월 혁명에 앞서 4월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대 학생들도 베트남전에 항의하며 학교 행정부서를 점거했다.

그해 겨울엔 도쿄대 의학부의 수업 거부와 파업 사태가 일어났으며 이 여파로 이듬해 1월에는 전학공투회의(全學共鬪會議·전공투) 소속 학생들이 도쿄대의 상징인 야스다(安田)강당을 점거하고 ‘도쿄대 해체’를 부르짖다 강제 해산돼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시위의 직접적 요인은 약간씩 달랐지만 청년 세대는 관용이 존중되고 차별이 사라진 사회, 나아가 성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사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40년. 68세대의 가치가 정면 도전을 받고 있다. 프랑스는 68세대가 정치 경제 사회의 주인공이 된 이후 끝없이 추락해왔다. 그들이 주장한 평등과 연대의 이면에서 노동과 학교와 공권력의 가치가 심각한 훼손을 겪었다.

혁명의 비판자들은 당시 혁명이 무질서와 사회 기강의 이완을 낳았고 사회 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고 매섭게 비판한다. 지난해 취임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러한 비판의 선봉에 서 있다.

여러 나라가 68세대와 비슷한 세대를 갖고 있다. 한국에서는 386세대가 역사에 비슷한 흔적을 남겼다. 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집권 10년 동안 청와대로, 국회로 대거 진출해 정치실험을 펼쳤다.

이 세대의 요구와 실험은 또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40년 전 68혁명을 되짚어 본다.

▼“톨레랑스? 게으름과 폭력은 옹호의 대상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1968년 5월은 단지 지나간 역사의 한 장에 그치지 않는다. 68혁명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거리에서, 공장에서, 교실에서 뜨겁게 찬반 논란을 빚는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68년 정신’에 문제를 제기한 첫 대통령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4월 대선 2차 투표에 앞서 그는 소속 대중운동연합(UMP) 당원들 앞에서 68정신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의 이른바 ‘베르시 연설’은 프랑스 지성계와 대중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에 대해 68혁명의 주역인 다니엘 콩방디 유럽의회 의원은 일간지 ‘라 리베라시옹’ 기고에서 이 연설 내용을 반박하며 68혁명의 가치를 변호했다.

집권 이후에도 사르코지 대통령은 68혁명이 가져온 노동의 가치 폄훼, 학교 권위 하락, 폭력 시위에 대한 관용 등에 전방위적인 공격을 펴고 있다.

▽‘일하지 말자’ vs ‘노동가치 회복’=사르코지 대통령은 68혁명에 의해 폄훼되기 시작한 노동의 가치 회복을 자신의 최우선 과제로 꼽아 왔다. 대선 유세 때부터 그는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많이 일하자’는 구호를 내세웠다. 세계 최저인 프랑스의 주 35시간 노동제를 비판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68혁명 당시의 구호 ‘절대 일하지 말라(Ne travaillez jamais)’에 담긴 노동의 가치 폄훼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후 두 차례의 법 개정을 통해 사르코지 대통령은 주 35시간 초과근로 수당에 대한 과세를 면제하는 등 35시간 노동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차별 없는 학교’ vs ‘권위 가진 학교’=사르코지 대통령은 68혁명 이후 격하된 중고교 교사의 권위 회복 및 대학 개혁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지난해 9월 전국의 교사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권위가 서 있는 학교의 회복’을 당부하면서 68혁명이 학교에 남긴 폐해를 비판했다.

프랑스 지식계에서도 사르코지 대통령이 촉발한 교육 관련 공방이 뜨겁다.

최근 철학자 알랭 팽키엘크로는 ‘학교의 논란(la querelle de l'´ecole)’이란 책을 펴냈다. 그는 뤼크 페리 전 교육부 장관, 보수 잡지 ‘코망테르’ 편집장 장 클로드 카사노바 씨 등과 교육 문제를 토론한 뒤 이 내용을 책에 담았다.

페리 전 장관은 68세대 교사들이 학교에서 지식과 가치의 전수를 등한시했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카사노바 씨는 “2년제 기술대학에 떨어져 4년제 일반대학으로 진학하는 나라가 프랑스”라며 대학에서 적절한 선발 과정이 사라진 점을 맹공했다.

▽‘비행은 범죄 아니다’ vs ‘공권력 공격 방치 안 돼’=사르코지 대통령은 폭력으로 치닫는 아프리카 이민계 청소년의 비행을 사회가 방치하는 것도 1968년의 ‘잘못된 유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968년 당시 시위대가 폭동진압경찰(CRS)을 나치친위대에 비유하며 공격하기 시작한 뒤 공권력의 권위를 부정하는 태도가 일종의 ‘사회적 습관’으로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오래전부터 사르코지 대통령은 폭도보다 경찰이 더 비판받는 현실을 문제 삼아왔다. 내무장관 시절부터 ‘제로 톨레랑스(무관용)’로 일관해 온 그는 지난해 11월 방리외(교외)에서 일어난 폭동에도 “폭도는 법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며 대규모 CRS 투입으로 강력 대처했다. 사태는 곧 진압됐지만 좌파와 반대자들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비행과 범죄를 구별하지 못 한다”며 비판에 나섰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모든게 동등한 가치라니

노력과 성과를 거부하나”▼

○ 사르코지의 ‘68정신’ 비판

68혁명 이후 사람들은 ‘도덕’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게 됐다. 프랑스의 정치 용어에서 도덕이란 말은 사라졌다.

당시 혁명의 지도자들은 도덕적 상대주의를 만연시켰다. 이들과 그 후예들은 ‘모든 것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이념을 퍼뜨렸다. 그들은 학생들이 교사들과 동등하다고 믿게 만들었고, 불량배가 그들의 피해자보다 중요하다고 믿게 만들었다.

소르본대 벽에 쓰여 있던 ‘구속 없이 살고, 구속 없이 즐기자’란 구호를 기억하는가. 68혁명은 냉소주의를 낳았다. 보라, ‘68의 후예’들이 윤리적, 도덕적 지표들을 공격한 결과 자본주의적 도덕은 약화되었다.

1968년 5월 이래 좌파들은 ‘성과’와 ‘노력’을 거부했다. 그들은 노동의 가치를 내던졌다. 35시간 노동제의 이데올로기는 이제 과거 사회주의자들인 장 조레스나 레옹 블룸의 (노동 중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노동의 위기야말로 도덕의 위기다. 나는 1968년의 장(章)을 닫으려 한다. 프랑스인들이 1968년 5월의 정신, 행동, 이념과 단절할 것을 나는 제안한다.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평등 연대 자유를 꿈꾸고

독단을 막은게 죄라면 죄”▼

○ 혁명주역 콩방디 의원 반론

그렇다. 당시 국영 라디오와 TV에 자유와 자율의 바람을 불어넣은 게 우리 죄다. 그게 사르코지 대통령을 기분 나쁘게 했나 보다. 학교와 대학과 공장 안에서 자율과 민주주의를 꿈꾼 게 우리 죄다. 집에서처럼 직장에서도 정의와 평등을 꿈꾼 게 우리 죄다. 그게 사르코지의 기분을 잡치게 했나 보다.

드골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 노동조합과 경영자의 독단을 제어한 것이 우리 죄다. 여성과 남성이 자유로이 자기 몸에 대해 결정하는 오늘날의 세상,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가진 오늘날의 세상을 만든 것이 우리 죄다. 분명히 사르코지에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평등과 연대와 자유의 욕망을 가졌던 것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죄다. 환경주의적이고 사회복지적인 세계화를 꿈꾼 것이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죄다. 진공청소기(사르코지 대통령이 내무장관 시절 방리외의 비행청소년을 쓸어 버리겠다고 말한 뒤 붙은 별명)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고, 경찰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믿은 게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죄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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