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아파트와 높은 빌딩이 들어서고 있는 용인시 기흥구 흥덕. 주택가로 둘러싸인 골목길 사이를 들어가다 보면 난데없이 곡괭이와 삽을 든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주중엔 평범한 직장인이고 주부였던 이들은 주말이 되면 능숙한 농부가 된다. 챙이 넓은 모 자를 쓴 채 삽을 들고 모종을 심는 모습들이 벌써 예사롭지 않은 농사꾼 분위기가 난다. 지속가능한 마을 공동체
현재 흥덕 나눔 텃밭에는 527가구가 각각 작은 텃밭을 임대해 가꾸고 있다. 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이 4,500평의 텃밭 지대는 버려져 있던 공간이었다. 원래 고등학교가 들어서려 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무산된 것. 이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단법인 ‘텃밭 보급소’ 에 토지를 위탁했고 지금은 사람 냄새나는 지역 공동체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4년 전 시작된 텃밭 나눔 사업은 점차 활기를 띠더니 이제는 경작할 밭이 없어서 대기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현재 이곳은 단순히 개인의 텃밭을 가꾸는데 그치지 않고 서로 농법을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흥덕 사랑방이 됐다. 텃밭 보급소의 일원인 김선희 씨 역시 나눔 텃밭에 대한 뿌듯함을 드러냈다.
“주말이 되면 가족 단위로 이곳 나눔 텃밭을 방문해 직접 경작하고 수확도 해가세요. 처음엔 매주 한 번만 오시던 분들도 점점 그 횟수가 잦아지죠.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웃으며 모종 심는 모습을 보면 이 일을 하는 것이 정말 보람돼요. 우리가 처음에 이 사업을 시작하며 바랐던 것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거든요. 한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관리가 힘들어질 법도 한데 이곳에 오신 분들은 워낙 깨끗 하게 이용해주셔서 문제가 없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자발적 으로 텃밭을 운영해가고 있습니다.” - 김선희 씨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체험학습장
나눔 텃밭에서는 유치원 이름이 쓰여 있는 아기자기한 팻말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작은 모종들은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손수 심은 것들이다. 이 밖에도 텃밭 보급소 에는 딸기 모종 캠핑카 만들기, 메타세쿼이아 열매 반지 만들기, 어린이 농부학교, 텃밭영화제, 텃밭사진전 등 지역주민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이곳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체험학습장이기도 해요. 지역 초등학교와 중학교, 유치원에서 생태학습장으로 애용합니다. 단순히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1년의 계획을 세워 진짜 농부가 되어보는 거예요.” - 김선희 씨
텃밭 앞쪽에 전시된 색색의 스티로폼 작품들 역시 체험 교육의 일환이다. 이날 특별히 주민들에게 ‘스펀지 바느질 아트’를 알리기 위해 참여했다는 임승희 씨. 그녀는 환경 디렉터이자 국내 유일의 정크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다소 생소한 스펀지 바느질 트는 무심하게 버려지는 폐스펀지 용기에 실로 그림을 수놓는 작업이다.
“우리가 항상 쓰고 버리는 스펀지이지만, 조금만 다르게 접근하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어요. 농사 역시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활동이기에 제 작업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이곳 텃밭을 찾았습니다. 이 작업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전 연령대가 할 수 있고, 재료도 구하기 쉬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요. 이곳에 온 분들이 텃밭을 가꾸는 것과 더불어 창작 활동의 즐거움까지 느끼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임승희 씨 전통농업 방식의 활성화
흥덕 나눔 텃밭에 들어서면 “똥은 밥이다”라는 재미있는 문구가 눈에 띈다. 텃밭 보급소 석진성 차장에게 이끌려 간 이곳은 다름 아닌 화장실. 하지만 운영진은 화장실 대신 “생태 뒷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화학 비료 대신 이곳 농부들의 대소변으로 거름을 만들기 때문이다. 차마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지만, 옛날 시골집에 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나무 변기(나무판자에 구멍을 뚫은 형태) 아래로 똥을 받는 통이 있고, 그 옆의 호스는 오줌을 받는 통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냄새가 안 난다. 벽과 변기 등을 탈취 효과가 탁월한 특수 목재로 만든 것이 그 비결이다.
“이곳에서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아요. 사람들의 똥오줌은 물론 음식물 쓰레기까지 거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밖의 살균. 살충제, 제초제나 비닐 등의 사용은 금지하고 있어요. 가급적 자연에 해를 입히지 않는 토종종자와 전통농업 방식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 석진성 차장 생태 뒷간 옆 하우스 안에서는 볍씨 뿌리기가 한창이었다. 벼농사의 기초 단계로 모판에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다. 1년 중 가장 큰 벼농사이다 보니 농부 중에서도 고수들만이 할 수 있다. 지금은 작은 씨에 불과하지만 곧 벼가 되고 쌀이 되어 식탁에 올라갈 것이다. 이렇게 거둔 농작물의 절반은 농부들이 갖고 나머지는 지역 독거노인들에게 기부한다. 직접 농작물을 경작하고 수확하는 성취감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행복까지 얻고 있다. “이곳 농부들은 텃밭에 입주하고 나서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뒤부터는 스스로 알아서 농사를 짓고 계세요. 직접 토비도 챙겨 오시고 아이들 손에도 삽이 들려 있죠. 이전에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분들인데도 말이에요. 혼자가 아닌 여럿이 같이 밭을 일궈나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도시에서 이렇게 사람 과 자연이 함께 어울릴 기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 석진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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