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비밀부터 신소재까지… 과학 난제 해결사 된 ‘포항의 빛’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6월 5일 04시 30분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 10주년
전자를 빛의 속도급으로 가속시켜 미시세계 밝혀주는 강력한 빛 발생
항암제-전자소재 개발… 활용 다양
물의 ‘두 가지 액체상’ 실험적 증명“… 가속기 증설 땐 더 많은 검증 가능

3세대 방사광가속기 1994년 12월 완공
3세대 방사광가속기 1994년 12월 완공

2016년 준공돼 올해 10주년을 맞는 경북 포항의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체급’을 바탕으로 기초과학 이론을 실험으로 증명하는 데 꾸준히 기여하고 있다. 화학, 재료, 양자,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굵직한 성과를 내고 있다.

선형가속기인 포항 4세대 가속기는 전기장으로 음전하를 띤 입자인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방사선인 X선을 만드는 장치다. 시료에서 산란 또는 회절된 빛을 검출해 미세한 구조나 매우 짧은 시간 내에 일어나는 변화를 파악한다. 태양보다 밝은 빛을 구현하고 10조분의 1초 단위로 분자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는 거대 현미경이다.

가속기 경쟁 치열… 열 팀 중 서너 팀만 기회

4세대 가속기는 이론으로만 제시됐던 수많은 가설을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평가된다. 유사한 성능을 내는 가속기는 포항 4세대 가속기를 포함해 미국, 일본, 유럽(독일), 스위스까지 총 다섯 곳뿐이다.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하는 가속관. 포항가속기연구소 제공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에서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하는 가속관. 포항가속기연구소 제공
건설비 약 4000억 원이 투입된 포항 4세대 가속기는 현재 포스텍에서 운영 중이다. 전자 가속 구간 길이는 약 700m에 달하고 빔라인 수는 3기다. 관찰 목적에 따라 X선 파장대를 세분화했다. 상대적으로 파장이 긴 연X선, 파장이 짧은 경X선 실험을 모두 수행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대학이고 정부출연연구기관, 기업이 뒤를 잇는다.

가속기를 활용하려는 연구자가 많을수록 가속기가 중요하게 쓰인다는 뜻이다. 지난 4월 방문한 포항가속기연구소의 이재혁 빔라인 매니저는 “4세대 가속기는 현재 사용 신청이 100이라면 그중 30∼40만 선정된다”며 “연구팀마다 다르지만 평균 6일 정도 사용한다”고 밝혔다.


굵직한 기초연구 성과 잇따라

올해 3월 김경환 포스텍 교수팀은 물이 4℃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이유를 실험으로 증명하는 데 성공하고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물의 특별한 성질이 ‘두 가지 액체상’ 때문이라는 이론이 앞서 제시됐지만 기술적 한계 때문에 실험으로 밝혀내는 것은 그동안 어려웠다.

김 교수팀은 포항 4세대 가속기로 극저온 과냉각수 관측에 성공했다. 과냉각수는 어는점보다 낮지만 얼음이 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영하 45℃ 이하 과냉각수는 기존의 어떤 측정 방법보다도 얼어붙는 속도가 빨라 관측이 불가능했다. 포항 4세대 가속기의 스펙과 김 교수팀만의 가속기 특화 실험 설계 노하우 누적으로 이뤄낸 성과로 평가된다.

이 매니저는 “물질 구조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짧은 시간 내에 추적하는 실험이나 단백질, 촉매가 빛에 반응하는 성질을 조사할 수도 있다”며 “기존 가속기보다 한번에 가할 수 있는 에너지가 더 크기 때문에 관찰이 어려운 ‘어두운’ 현상을 선명하게 관찰하기도 좋다”고 설명했다.

4세대 가속기를 활용한 연구성과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꾸준히 나오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의 차세대 소재 설계 단서를 제시하는 새로운 전자구조 발견, 포항가속기연구소 연구팀의 스마트 소재로 주목받는 이산화바나듐 박막의 전기적 특성 제어 원리 규명,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의 과산화효소 및 항암제 개발에 쓰이는 효소 작동 원리 규명 등이 올해 성과로 발표됐다.

“실험이 불가능한 이론 아직 많아”

포항가속기연구소는 4세대 가속기에 경X선 연구장치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지만 예산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김 교수팀에서 물 특성 연구를 주도한 유선주 포스텍 화학과 석박통합과정생은 “과학계에는 아직도 실험 증명이 불가능한 이론이 많다”며 “앞으로 새로운 가속기가 등장한다면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995년부터 가동된 포항 3세대 가속기도 2012년 업그레이드를 거쳐 30년 넘게 기초과학과 산업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3세대 가속기는 원형 구조로 출력은 4세대보다 작지만 빔라인을 여러 개 설치해 활용하기 용이하다. 현재 36기가 설치돼 있다.

3세대 가속기의 마지막 추가 빔라인은 이차전지 소재 분석용이다. 김연길 포항가속기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트렌드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 3세대 가속기 빔 절반이 이차전지 연구에 쓰인다”며 “주로 양극재 분석에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3세대 가속기 사용 경쟁률도 2 대 1로 높다.

7월 첫 삽을 뜰 예정인 오창 다목적방사광가속기는 포항 3세대 가속기와 같은 원형 구조로 다양한 산업계 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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