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잘 못하고 식욕 떨어진 부모님, 우울증일 수도[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6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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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노인 우울증, 신체화 경향 강해
자식들이 2주마다 부모 살펴야
의욕저하 등 네 가지 증세 꼭 체크
초기 우울증일 때 체중 크게 빠져

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인 우울증과 치매가 겉으로는 비슷해보이지만 증세와 치료법이 모두 다르다고 했다. 전 교수는 특히 자식들이 2주마다 부모님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야 노인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70대 부부가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찾아왔다. 아내 A 씨의 치매 여부를 알기 위해서다. 남편 B 씨가 보기에 아내 A 씨는 치매 초기였다. 최근 들어 A 씨가 자주 깜빡깜빡한다는 것이다. 냉장고에 뭘 집어넣었는지 까먹는 일도 많아졌고, 음식을 태우는 횟수도 늘어났다고 했다. 아내 A 씨도 자신이 치매 초기가 아닐까 걱정이 되던 차였다. A 씨는 남편에게 병원에 가 보자고 했고, 이날 부부가 함께 상담을 받은 것이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와 혈액 검사 결과 아내 A 씨에게서 치매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A 씨는 노인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오히려 치매 판정은 남편 B 씨에게 떨어졌다. B 씨가 평소 치매로 의심될 만한 증세를 보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진단이 떨어진 걸까.

전 교수는 “이 부부처럼 치매인 줄 알았는데 우울증이고, 아무런 증세도 없는데 치매 판정이 나오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고 했다. 문제는, 병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제대로 치료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울증 환자가 치매 치료제를 먹는다고 해서 증세는 개선되지 않는다. 이 부부의 경우 아내 A 씨는 우울증약을 복용한 후 증세가 크게 개선됐다. 남편 B 씨도 초기에 치매를 발견함으로써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우울증일까? 치매일까?
노인 우울증인지 치매인지는 뇌 MRI 검사를 받으면 알 수 있다. 뇌의 해마와 측두엽 부위가 위축돼 있다면 치매 초기다. 그런 조짐이 없다면 치매일 가능성은 다소 낮다. 우울증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이 부부의 경우 치매로 의심되던 아내 A 씨는 뇌의 상태가 건강했다. 반면 남편 B 씨는 해마가 위축돼 있었다. 이 때문에 B 씨에게만 치매 판정이 떨어진 것이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두 질병을 구분할 수 없을까. 전 교수는 “노인 우울증과 치매를 두부 자르듯이 정확히 구분하긴 쉽지 않다. 다만 증세를 세심하게 살피면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단 우울증이라면 걱정이 많아지는 특징이 있다. 특히 ‘내가 치매가 아닐까’라는 식의 걱정을 자주 한다. 전 교수는 “우울증과 치매 증세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치매라고 자가진단을 내리면서 걱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걱정 때문에 본인이 직접 병원을 찾아 치매 검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

치매인 경우는 정반대다. 자신이 치매 혹은 인지장애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데다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가족들이 병원에 모시고 와서 치매 확진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이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우울증에 걸린 아내가 먼저 남편에게 병원에 가자고 했다. 치매에 걸린 남편은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둘째, 방향 감각에서 차이가 난다. 치매에 걸렸다면 길을 헷갈린다. 목적지까지 스스로 찾아가는 게 쉽지 않다. 반면 우울증이라면 길을 찾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목적지까지 잘 찾아간다면 치매보다는 우울증에 가깝다. 그 대신 우울증의 경우 더하기와 빼기 같은 계산 분야에서 집중력이 갑자기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셋째, 기억력이 떨어지는 양상이 다르다. 치매는 대체로 오래전의 일은 기억하면서도 최근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또 예전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말하는 경향도 있다. 반면 우울증은 시간보다는 감정에 더 연결돼 있다. 그동안 잊고 지내던 기억 중에 특히 아프고 슬픈 기억을 더 많이 떠올린다. 이런 게 반복되면 우울증은 더 심해진다.

●젊은 우울증과 중년 우울증
우울증에 걸리면 당연히 우울한 느낌이 강해진다. 하지만 다른 증세도 나타난다. 전 교수는 “나이에 따라 우울증이 발현되는 방식은 다르다”고 했다. 그 차이를 알아두는 게 좋다.

10대와 20대의 ‘젊은 우울증’은 감정 기복이 심한 게 특징이다. 타인의 말투나 표정에 예민하고, 마음의 상처도 잘 생긴다. 밤에 뇌가 각성하면서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한다. 주로 밤에 먹으며, 폭식하는 경향도 강하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학교나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한다.

젊은 우울증의 경우 초기에는 자각하지 못하다가 중간 단계 이후 우울함을 느낀다. 이때부터는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 같고, 누군가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집안에 자신을 가두는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40대 이후의 ‘중년 우울증’ 양상은 다소 다르다.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우울한 느낌이 강하고 의욕도 크게 떨어진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누워만 있고 싶을 때가 많다. 젊은 우울증과 달리 식욕이 떨어져 먹는 것도 변변찮다. 대체로 오전에 증세가 심하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호르몬(코르티솔)의 분비량이 오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회사원은 오전 출근을, 주부는 오전 가사 노동을 무척 힘들어한다.

중년 우울증의 또 다른 특징은 ‘건강 염려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신체 증세의 원인을 찾지 못하니 중병에 걸린 건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한다. 사실 우울증에 걸리면 나이에 상관없이 두통, 통증, 전신 쇠약감, 가슴 답답함, 미세한 호흡곤란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다만 젊은 나이에는 육체적으로 건강한 덕분에 이런 증세를 덜 느낄 뿐이다.

●노인 우울증, 신체 증세 많아
노인 우울증은 ‘신체화’의 경향이 강하다. 만성 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에 따라 두통, 요통, 전신 통증이 많이 나타난다. 이를 전 교수는 “슬픈 기운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라 표현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증세도 다른 연령대보다 심하다. 식욕이 떨어져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바람에 폐렴과 같은 2차 합병증으로 악화할 수도 있다. 우울증과 함께 불면증이 심해지는 점도 노인 우울증의 큰 특징이다.

변덕이 심해진다. 갑자기 화를 버럭 내거나 짜증을 낼 때도 많다. 같은 말을 반복할 수도 있다. 이런 증세는 치매 초기와 비슷해 세심하게 관찰하거나 검사가 필요하다.

건강염려증도 노인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세다. 신체 증세가 나타나니까 병원을 찾아다니고, 약을 찾아 먹는다. 주관적으로 실제 통증보다 과하게 느끼는 경향도 강하다. 진통제도 더 많이 먹는다. 하지만 통증이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고, 운동하는 것도 싫어진다. 나중에는 밖에 나가기도 싫고, 실제로 나가지도 못한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우울증이 치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년 때까지 우울 증세가 전혀 없다가 노인으로 접어든 후에 우울증이 생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 교수는 “치매 환자의 30% 정도에서 우울증이 함께 나타난다”고 말했다.

●부모 상태 2주마다 살펴야
전 교수에 따르면 국내 노인 100명 중 5~10명은 우울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치료받는 환자는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 정도는 방치돼있는 셈이다. 전 교수는 “혼자 사는 노인이 점점 많아지면서 ‘사각지대’가 생기는 셈”이라며 “노인들은 우울증이 생겨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식들의 역할이 무척 크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자식들이 정기적으로 부모 상태를 살펴야 한다. 전 교수는 “2주마다 한 번씩은 전화나 직접 방문을 통해 부모님의 증세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의욕 저하 △기억력 저하 △불면증 △식욕부진 등 네 가지 증세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만약 이런 증세가 2주 동안 일관되게 나타났거나 더 심해졌다면 노인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치매의 경우 불면증이나 식욕부진 증세는 비교적 덜한 편이다. 다만 혈관성 치매의 경우에는 식욕부진을 동반할 수 있다.

체중 변화도 살펴야 한다. 노인 우울증에 걸리면 의욕이 떨어지면서 만사에 흥미가 떨어진다. 집 밖에도 잘 나가려 하지 않는데 먹는 것마저 부실해서 체중이 빠질 수밖에 없다. 전 교수는 “우울증 초기에는 대략 3개월 사이에 체중이 5~10㎏ 정도가 빠진다. 이 점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노인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면 대략 2~4주 후부터 의욕이 살아난다. 다만 젊은 우울증과 비교했을 때 치료 기간은 긴 편이다. 전 교수는 “최소한 6개월, 보통은 1~2년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인 우울증 예방을 위한 지침
1. 고립이 우울증을 키운다. 사람들과 어울리자.
2. ‘나 홀로 식사’는 줄이고, 2인 이상 식사를 하자.
3.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 질환을 잘 관리하자.
4. 의욕 저하를 막기 위해 평소 활동량을 늘리자.
5. 노인에게 근력은 필수. 근력 운동을 꼭 하자.
6. 자식들은 2주마다 부모님 상태를 체크하자.

자료 :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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