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마라톤 평생 즐기려면 욕심 버려야”[양종구의 100세 건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9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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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승 원장이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달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재승 원장이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달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재승 동방사회복지회 어린이사랑의원 원장(77)은 연세대 의대 소아과 교수 시절인 1986년 큰 결단을 내렸다. 대학에 들어와 피우기 시작한 담배를 끊고 산을 타기로 한 것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몸이 망가져 더 이상 방치하면 쓰러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이재승 원장이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완주한 뒤 포즈를 취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재승 원장이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완주한 뒤 포즈를 취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대학병원에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중환자들입니다. 머릿속에 온통 환자들로 가득 차 잠도 제대로 못자고, 담배와 술로 스트레스를 달래다보니 몸이 완전히 망가졌더라고요. 담배를 끊겠다고 각오하고 맘먹고 관악산을 올랐는데 얼마 가지 않아 숨이 차서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예과 시절 산악회에 가입해 쉽게 오르던 산이었는데…. 땅을 치며 통곡을 했죠.”

의사로서 자신의 몸을 너무 망쳤다는 데 더 실망스러웠다. 더 독하게 마음먹게 된 이유다. 그 때부터 틈 만나면 산에 올랐다. 집(서울 반포)에 있을 땐 관악산을, 주말에 신촌 병원을 마칠 땐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을 올랐다. 연세의료원 산악회에 가입해 한달에 한번씩 전국의 명산도 찾았다. 1999년엔 세브란스의대 출신들로 세브란스산악회(세산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국내 명산을 다 정복한 뒤엔 일본 후지산과 북알프스, 남알프스, 대만 위산(玉山),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등 해외 명산도 올랐다. 킬리만자로 등정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재승 원장이 2003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이재승 원장 제공
이재승 원장이 2003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에 올라 포즈를 취했다. 이재승 원장 제공
“1998년 킬리만자로에 도전했죠. 그런데 올라가다가 의사로서 자존심이 좀 상했어요. 4000m 정도 산만 도전하다 고산병에 대해 전혀 준비를 하지 않고 가는 바람에 고지를 바로 앞에 두고 남기고 포기했습니다. 참나…. 제가 의사였다는 게 부끄러웠습니다. 억울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받기도 힘든 휴가 1주일 냈고 엄청난 경비까지 지불했는데….”

이 원장은 킬리만자로 5895m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 전 세계 고산병관련 책자와 논문을 수집해 연구했다. 이 원장 휴대폰 뒷자리 번호가 5895다. 그만큼 절실했다. 그리고 2003년 5월 13명의 대원을 다 정상에 올리는 쾌거를 이룬다.

이재승 원장이 한라산 백록담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재승 원장 제공
이재승 원장이 한라산 백록담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재승 원장 제공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술도 2년 끊었죠. 5년 전 혹시나 술 때문에 못 올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등반에 나서 아침마다 대원들 혈압체크하고 약을 주면서 고산병이 오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까지 등반 대원 전원이 다 정상을 밟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2007년 한국산악회가 구성한 실버원정대 주치의로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 하지만 7000m에서 포기했다. 그는 “다른 원정대 사람들이 죽어나가 겁이 났다. 또 크레바스에 빠지면 죽을 것 같았다. 당시 원정대원 8명 중 2명만 정상에 올랐다”고 했다.

이재승 원장이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달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이재승 원장이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달리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마라톤은 2000년부터 시작했다. 당시 세브란스마라톤 동호회 회장이었던 안영수 약리학과 교수(71)가 “마라톤도 등산만큼 좋다”고 해 마음이 동한 것이다. 동호회에 가입했지만 등산을 오래 한 터라 혹 풀코스 완주를 못하면 창피할까 혼자서 몰래 훈련하며 풀코스 완주를 준비했다. 2001년 4월 경주마라톤 하프코스를 달렸다. 2시간 1분. 내심 풀코스는 무난히 달릴 것 같았다. 그해 여름 혼자 풀코스를 4시간 50분 정도에 갈린 뒤 10월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를 4시간 30분에 완주했다. 50대 후반에 처음 풀코스에 도전해 낸 기록으론 수준급이다. 등산으로 달련 된 체력에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산 정상을 정복한 뒤 성취감이 오듯 풀코스를 완주한 뒤에도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정말 뿌듯했습니다. 직접 내 다리로 달린 것이기 때문에 100%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등산과 마라톤을 병행했다. 산을 오르고 달리다보면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모두 잊을 수 있어 머리가 맑아진다. 특히 마라톤은 달릴 때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복잡한 일을 정리하고 향후 어떤 일을 할지도 계획할 수 있다. 외래환자 돌보고, 학생들 가르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지만 연구실에 마라톤화와 운동복을 갖춰놓고 틈만 나면 달렸다. 해외나 지방에서 열리는 학회나 세미나는 마라톤 전지훈련을 가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재승 원장이 2005년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해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이재승 원장 제공
이재승 원장이 2005년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해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이재승 원장 제공
2005년 1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다. 의사로서, 등산과 마라톤 하면서 건강엔 자신이 있었는데 위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해 2월 19일 금강산마라톤, 4월 18일엔 보스턴마라톤에 참가 신청까지 했던 터였다. 1월말 수술한 뒤 두 대회 모두 참가해 완주했다. 대단한 정신력이었다. 그는 “지금은 무용담처럼 얘기하지만 생각해보면 다소 무모했다. 금강산마라톤에 출전했을 땐 수술하고 꿰맨 곳이 다시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이 원장은 의사이기 때문에 절대 몸을 망칠 정도로 무리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361회나 뛰었고, 100km 울트라마라톤, 한반도 횡단 308km도 완주했지만 관절에 전혀 이상이 없다. 힘들면 과감히 포기했기 때문이다.

한반도 종단 622km(전남 해남에서 강원 고성)와 537km(부산에서 임진각)에 7차례 도전했다 모두 중도 포기했다. 2007년 120km에서 그만뒀고, 2008년 100km, 2009년 400km, 2011년 365km, 2012년 167km, 2013년 330km, 2014년 169km에서 각각 포기했다. 그는 “일단 시작한 것이라 욕심을 부릴 수도 있었지만 계속 달릴 경우 다치는 것은 고사하고 체력이 떨어지면 자칫 정신줄을 놓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과감히 포기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고 했다. 국토종단 및 횡단 울트라마라톤은 사실상 혼자 달려야 해 밤엔 교통사고 사망 사고도 많이 일어난다. 200km 울트라마라톤도 도전했다가 100km에서 포기했다.

이재승 원장이 2006년 한반도 횡단 울트라마라톤 308km를 완주한 뒤 포즈를 취했다. 이재승 원장 제공
이재승 원장이 2006년 한반도 횡단 울트라마라톤 308km를 완주한 뒤 포즈를 취했다. 이재승 원장 제공
“60세가 다 돼 마라톤에 입문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즐기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도전하기에 저도 도전은 했지만 힘들면 포기합니다. 제 주변에 기록과 완주 횟수에 집착하다 몸이 망가진 사람이 많아요. 마라톤 풀코스를 1000회, 2000회 넘게 완주하면 뭐합니까. 무릎 연골과 관절에 이상이 생겨 고생하고 있습니다. 제가 마라톤 시작한다고 했을 때 후배 정형외과 의사들이 ‘선생님 언제 오실 거예요?’라며 농담했는데 아직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100세 시대, 마라톤을 평생 즐기려면 무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원장은 특히 산악마라톤인 트레일러닝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도 지리산 화대종주(화엄사에서 대원사) 48km도 해봤고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45km도 해봤는데 너무 위험합니다. 산을 오르내리는 게 운동이 많이 되고 좋긴 하지만 내리막 달리는 것은 무릎 등 관절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하더라도 정말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달려야 합니다.”

이재승 원장(오른쪽)이 2018년 뉴욕마라톤에서 질주하고 있다. 이재승 원장 제공
이재승 원장(오른쪽)이 2018년 뉴욕마라톤에서 질주하고 있다. 이재승 원장 제공
이 원장은 마라톤으로 모교사랑을 실천하기도 했다. 2019년 전주고 개교 100주년을 맞아 동문들과 전주시 주변 100km를 달리고 1km=1만 원, 100만 원의 장학금을 냈다. 2022년엔 졸업 60주년을 맞아 60km를 달리고 60만 원을 장학금으로 낼 계획이다.

이 원장은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퍼지면서 대회 출전을 멈추고 집 근처(서울 신촌) 연세대와 이화여대 캠퍼스, 안산을 달렸다. 올해 코로나 19가 좀 누그러지면서 4월과 5월 서울 도림천 일대에서 열린 공원사랑마라톤에서 풀코스를 2번 달렸다. 최고기록은 3시간45분이지만 지금은 5시간을 훌쩍 넘긴다. 힘들면 쉬면서 물 한잔 마시고 천천히 달린다.

이 원장은 코로나 19가 잠잠해지면 미국대륙 4500km 횡단, 그리고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솔직히 한창 마라톤에 빠졌을 때 미국대륙 횡단을 맘속에 두고 있었는데 벌써 80세를 눈앞에 두고 있네요. 현재론 목표일뿐입니다. 목표가 있어야 사는 이유도 있으니까요. 일종의 버킷리스트라고 보면 됩니다. 에베레스트는 2007년 오르지 못해 정말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이 원장은 “과유불급(過猶不及), 욕심을 버려야 평생 운동을 즐길 수 있다”며 “지금 현재 산을 오르고, 마라톤을 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며 웃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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