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밑창-휴대전화에 남아있는 단서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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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 분석하면 동선 알 수 있어… 과학수사서 ‘지문’처럼 활용될 듯

영국 BBC 드라마 ‘셜록’ 시즌1에는 악당이 남긴 운동화에서 발견한 꽃가루를 단서로 인질이 있는 장소를 알아내는 셜록의 모습이 나온다. BBC 드라마 ‘셜록’ 캡처
영국 BBC 드라마 ‘셜록’ 시즌1에는 악당이 남긴 운동화에서 발견한 꽃가루를 단서로 인질이 있는 장소를 알아내는 셜록의 모습이 나온다. BBC 드라마 ‘셜록’ 캡처
그것은 ‘게임’이었다. 범인이 보낸 사진을 단서로 도착한 텅 빈 지하실에는 운동화 한 켤레만이 놓여 있었다. 낡은 운동화는 마치 범인의 속삭임을 대신 전하는 듯했다. 여기에서 힌트를 찾아 어디 한번 나를 찾아보시지. 만약 실패한다면 이 게임에서 승자는 범인이 되고, 인질은 목숨을 잃게 된다.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영국 BBC 드라마 ‘셜록’ 시즌1에서 셜록은 신발 밑창에 묻은 진흙에 섞여 있던 꽃가루만 보고 신발 주인이 살았던 지역을 금세 추리해냈다. 지역마다 많이 발견되는 꽃가루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운동화에 진흙이 묻어 있지 않았다면 셜록은 범인이 낸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을까. 최근 과학자들은 증거물에서 발견되는 꽃가루나 미량의 화학물질 외에도 미생물이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 미생물 추적해 동선 파악

사이먼 랙스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ANL) 연구원은 신발 밑창과 휴대전화에 묻은 미생물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주인이 어느 곳에 들렀는지 추적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미생물 관련 학술지 ‘미생물유전체(Microbiome)’ 11일 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미국 워싱턴DC, 캘리포니아 주, 캐나다 밴쿠버에서 각각 개최된 과학 콘퍼런스에 참여한 89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신발과 휴대전화에서 미생물을 채취한 뒤 종류를 분석했다. 그 결과 같은 콘퍼런스에 다녀온 사람끼리만 공유하는 미생물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표본에 포함된 미생물 조성만으로 소지품의 주인이 어느 콘퍼런스에 다녀왔는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랙스 연구원은 “미생물을 이용한 과학수사는 현재 새롭게 떠오르는 수사 기법”이라면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대규모 데이터를 축적하면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개인마다 고유한 ‘미생물 지문’

장 속에 사는 미생물이 사람마다 그 종류와 비율이 다르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땀이나 피부, 대소변에 사는 미생물의 종류 또한 사람마다 판이하게 다르고 이를 ‘지문’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에릭 프랜조사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 박사팀은 사람 몸에 사는 미생물의 종류와 구성비율이 개인을 구별할 수 있을 만큼 고유한 값을 가지며, 1년 이상 시간이 흘러도 그 값이 거의 변하지 않아 지문이나 홍채처럼 개인을 식별할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11일 자에 발표했다.

프랜조사 박사는 “실험에 참가한 242명 중 80%는 1년 전에 채취한 미생물 조성 표본만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콘돔을 사용한 성범죄 등 정액에서 DNA를 채취해 용의자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에도 미생물로 용의자를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실바나 트리디코 호주 머독대 연구원은 성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에 사는 미생물이나 피해자의 몸에 남아있는 미생물로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12월 과학수사 분야 학술지 ‘수사 유전학(Investigative Genetics)’에 발표했다.

천종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사람 몸에 사는 미생물은 계속 변하기 때문에 실제로 과학수사 현장에 이용되고 법정에서 효력을 얻기까지는 정확도 등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우상 동아사이언스 기자 idol@donga.com
#미생물#동선#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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