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9년 7월 8일 03시 0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성 인지의학의 역사는 짧지만 관련 연구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편이다. 성 인지의학을 통해 약물 대사, 위장관 계통 질환, 심장혈관계 질환 등에서 남성과 여성의 여러 가지 차이가 밝혀졌다.》
폐경기 여성 치매예방 호르몬 감소… 남성은 변화 거의 없어
흡연 폐암 확률, 유전자적 취약성 때문에 여성이 20~70% 더 높아
○ 여성-남성 흉통 양상 달라
심장 발작의 전형적인 증세는 가슴이 타는 듯한 통증과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심장발작을 겪은 여성의 20%는 매우 다른 양상의 징후를 호소한다. 배 위 쪽이나 등에 통증을 느끼고 숨이 가빠지고 토할 듯하고 땀이 흠뻑 나는 것. 이래서 소화불량이나 급성 담낭염으로 오진돼 치료시기를 놓치기도 쉽다.
최초의 심장발작이 일어났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더 주의해야 한다. 편욱범 이대목동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처음 심장발작을 겪은 후 여성이 남성에 비해 예후가 나쁜 것은 여성의 경우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연령대가 높고 당뇨 등 동반질환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초기에 증세를 간과해 병이 진행된 후 병원에 오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의 심장발작 증세를 ‘화병’으로 오인해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심장발작의 여성 맞춤형 진단법이나 치료법은 아직 상용화된 것이 없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와 국립보건원 아스피린 연구에서 아스피린 복용 효과가 남성과 여성에서 다르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 여성이 아스피린을 어떻게 복용하면 더 효과적인지는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다.
심장질환 검사 역시 남성이 좀 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관상동맥 조영술에서 관상동맥 협착증은 남성보다 여성이 확진되는 경우가 적다. 편 교수는 “여성 환자를 위한 검사방법의 개발과 평가를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우울증 앓는 남성은 공격형, 여성은 은둔형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에 잘 걸린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우울증을 예방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52% 많이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부가 똑같이 우울증을 앓을 경우에도 남편과 부인의 증세는 현격히 다르다. 세로토닌 농도가 떨어지면 여성은 의기소침해지고 근심 걱정에 잠기고 안으로 숨는 데 반해 남성은 술을 마시고 공격적 행동을 한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도 남성과 여성은 조금 다르다. 정지향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여성은 세로토닌 농도가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SSRI)’를 많이 사용하는 반면 남성은 삼환계 항우울제를 주로 사용하게 된다”고 말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치매도 잘 걸린다. 뇌세포 보호 기능을 하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때문이다. 여성은 폐경이 되면서 에스트로겐 분비가 줄어든다. 뇌세포가 그만큼 보호받지 못하고 치매에 취약하다. 남성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사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분비되는데 테스토스테론은 뇌에서 에스트로겐으로 바뀌기 때문에 뇌세포 보호 기능을 잃지 않는다.
치매의 경우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증상은 남녀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남성이 여성보다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활동조절용 약물을 좀 더 투입하는 경향이 있다.
○ 흡연에 의한 폐암은 여성이 더 위험
여성 흡연자는 남성 흡연자보다 폐암에 더 취약하다. 폐암이 발생하는 부위와 흡연에 따른 폐암 발생률에서 차이 때문이다. 남성은 손상 부위가 폐 중앙부의 비교적 큰 기도에 위치해 증상이 일찍 나타나는 경향이 있지만 여성은 주변부에 발생해 암이 진행된 지 한참 후에야 경고 신호가 나타난다.
남성 흡연자와 여성 흡연자가 피우는 담배 개수가 같더라도 여성은 폐암에 걸릴 확률이 남성보다 20∼70% 높다. 유전자적 취약성 때문이다. 폐암에 걸린 여성 흡연자의 유전자를 조사해보면 특정 유전자가 손상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남성에게서는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여성은 유전적 취약성 때문에 담배의 발암물질을 중화시키는 신체 능력이 손상돼 폐암에 걸리기 쉽다. 이는 여성이 간접흡연으로 암에 걸리기 쉬운 현상도 설명해 줄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몇 개비를 피우는지, 연기를 얼마나 깊이 들이마시는지와 관계없이 나이가 어릴수록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청소년기에 흡연을 시작해 수년 이상 담배를 피운 적이 있는 여성이라면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 위식도 역류, 여성에 많지만 남성엔 악성
위식도 역류성 질환은 위 내용물이 식도 하부로 역류해 올라오는 것이다. 위산과 섞인 음식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면 가슴에 타는 듯한 통증이 일어난다. 이 질환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걸린다. 그대신 남성은 여성보다 빈도는 낮지만 좀 더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하기 쉽다. 여성은 이 질환으로 인해 식도가 손상되려고 할 때 식도 내층을 보호하고 복구하는 단백질을 남성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보다 십이지장궤양에 걸릴 가능성도 훨씬 높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산을 분비하는 위벽 세포를 자극해 위산을 더 많이 생성하도록 하기 때문. 반면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은 산 분비를 억제하고 또 다른 여성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은 위벽 보호 기능을 하기 때문에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담낭 질환은 여성에 많은 반면 췌장암은 남성에 많다. 이 역시 호르몬 작용 때문이다. 여성은 프로게스테론이 담즙의 분비속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담낭 질환에 걸리기 쉬운 반면 남성은 암세포로부터 췌장을 보호해 주는 여성호르몬이 없기 때문에 여성보다 췌장암에 취약하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