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정신건강 지상 클리닉]<下>우울증 미리 막자

  • 입력 2008년 4월 7일 02시 51분


“회사 때려 치울거야”

한달 넘게 계속 땐 체크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살 원인은 우울증으로 판명됐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은 죄책감을 갖게 된다.

‘그렇게 힘들었나’ ‘왜 그런 기미를 미리 알아채지 못했을까’ 하며 뒤늦은 후회를 한다.

그만큼 상대방이 우울증에 걸린 것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마저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비율이 35.6%에 불과하다.

그러나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상대의 우울증을 감지해 낼 수 있다.

상대가 우울증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은 언제쯤,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 인지기능 떨어져 업무상 실수도

최근 주부 서모(41) 씨는 남편으로부터 “부하 직원들이 내 흉을 본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남편은 굳은 표정에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잠이 잘 안 온다”면서 밤에 혼자 술을 마시고, 술 마시다 한숨을 쉬고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서 씨의 남편은 2년 전 우울증으로 입원했던 병력이 있다. 서 씨는 우울증이 재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편과 함께 정신과를 다시 찾았다. 남편은 의사와의 상담에서 “최근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맡게 됐는데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부담이 된다”면서 “부하 직원들이 나보다 더 나은 것처럼 느껴져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일에 자신감이 점점 없어지고 피하고만 싶다”고도 했다. 서 씨의 남편은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주변상황에 대한 인지기능이 떨어진다. 그만큼 행동도 평상시와 달라진다. 업무 능률이 현저히 떨어져 평소에 안 하던 실수를 한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도 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

대인관계에 부쩍 어려움을 느끼면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피하고 집에만 있으려고 하는 것도 대표적인 우울증세다.

이런 증상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울증과 일시적 우울감은 증세의 지속 기간이 다르다. 전덕인 한림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일시적 우울감은 대개 한 달을 넘기지 않는다”면서 “한 달 넘게 이런 증상이 계속 되면 혼자 극복하지 못하는 상태로 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상대가 우울증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지를 알아보려면 △예전에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는지 △가족(특히 1촌) 중 우울증 환자가 있는지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지 △심각한 질병이 있는지 △술을 너무 많이 먹는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지 △가족 내 불화가 있는지 등을 체크해 봐야 한다.

○ ‘환자’로 인정 적극 치료해야

주위 사람들이 우울증 환자에게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우울증을 ‘별것도 아닌 꾀병’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정신력이 약하다” “마음만 굳게 먹으면 해결되는 것 아니냐”며 환자 잘못으로 몰아가면 우울증은 더 악화된다.

주부 정영인(31) 씨는 3년 전 결혼한 남편과 성격이 맞지 않고 시댁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다. 1년 전 아이를 낳은 후 증세는 더 심해졌다. 아이가 울면 때리며 화내는 일도 잦아졌다.

남편은 “나도 회사 일 때문에 힘들다”면서 정 씨를 탓했다. 친정어머니와 함께 정신과를 찾은 정 씨는 중간 정도의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상대를 ‘환자’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단 우울증에 걸렸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는 지속적으로 병원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정신과에서는 약물, 상담, 뇌 전기자극 등을 이용해 우울증을 치료한다.

상대가 우울증에 걸렸다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집에만 있으려고 한다면 함께 외출해 준다. 시간을 내서 함께 운동을 하는 것도 좋다. 운동을 하면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엔도르핀 등이 분비된다.

이동우 을지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우울증 환자는 피로감, 의욕 저하 등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할 수 있도록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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