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64% “우울증 걸렸는지 몰랐다”

  • 입력 2008년 3월 24일 03시 00분


■ 고대 안암병원 이민수 교수 - 경희의료원 백종우 교수 -가톨릭의대 임현우 교수팀 조사

회사원 박준태(가명·32) 씨는 3년째 밤잠을 못 자고 불안한 느낌이 들며 자주 복통을 일으킨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만성복통을 치료하기 위해 내과를 찾았다가 뜻밖에 ‘정신과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정신과에서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최근 각종 정신질환 관련 범죄가 급증하는 가운데 우울증 환자의 64.4%는 자신이 우울증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우울증 환자가 병원을 찾기까지에는 3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민수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교수, 백종우 경희의료원 정신과 교수 임현우 가톨릭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전국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은 우울증 환자 1425명을 조사한 결과 우울증 환자의 64.4%는 ‘우울증인지 몰랐다’고 답했다.

또 우울증 환자가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기까지 3.2년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돼 우울증 환자가 조속한 시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2.5년)보다 여성(3.5년) 환자가, 소득이 있는 환자(3년)보다 소득이 없는 환자(5년)가 정신과를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울증 환자의 45%는 정신과가 아닌 내과, 신경과, 한의원, 신경외과, 가정의학과, 외과 등 다른 진료 과를 먼저 거친 후 정신과 진료를 받았으며 많게는 타과 6곳을 거친 이도 있었다.

우울증 환자로 하여금 진료를 받도록 결심하게 한 증상은 불면증(24.3%)이 우울감(15.4%)보다 더 많았다. 불안감(14.6%), 의욕 저하(8.9%), 두통(6.2%), 화병(5.4%), 소화불량(3.3%) 등도 주요 이유였다.

우울증과 관련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62.9%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실제 자살을 시도한 사례도 35.4%나 됐다. 자살 시도는 20, 30대(평균 2.3회), 40, 50대(2.2회), 60대 이상(1.6회), 10대(1.5회) 순이었다.

백 교수는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들이 자살을 생각한 비율은 미국, 유럽과 큰 차이가 없지만 실제로 자살을 기도한 비율은 미국(15%)에 비해 훨씬 높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 우울증을 인식하는 경우가 30% 정도밖에 안 되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데 3년 이상 걸리는 것은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낮기 때문”이라며 “우울증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기 때문에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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