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금살금 발자국 쫓아가니… “앗, 고라니다”

  • 입력 2008년 1월 4일 03시 01분


겨울방학 공원서 야생동물 공부하기

“한결아, 저게 뭘까.”

“발자국, 발자국.”

엄마와 함께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을 찾은 이한결(4) 군은 마냥 신이 났다. 누군가 장난으로 흙바닥에 찍어 놓은 것 같은 V자 모양의 발자국이 너무나 또렷하다. 방금 전 만들어진 것 같았다. 홍청(34) 씨는 아들과 함께 호기심이 발동해 발자국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발자국을 따라가면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덩치가 큰 포유동물은 보호색이 뚜렷하고 울음소리를 내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부분 밤에 활동한다. 그만큼 자기와 다른 생물종과는 대화를 나눌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하지만 수컷과 암컷이 만나 사랑을 하거나 경쟁자와 영역다툼을 하기 위해서 야생동물은 반드시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그들의 흔적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야생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 나무 긁은 자국으로 사슴과 고라니 구별

풀이 무성하지 않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겨울에는 야생동물의 흔적을 훨씬 쉽게 만날 수 있다. 한결 군이 하늘공원에서 발견한 발자국도 한 예이다.

“잠깐, 만지지 마.”

앞서 걷던 한결 군은 발자국을 따라 걷다가 타원 모양의 검은 구슬 더미를 발견했다.

V자 모양의 발자국과 구슬 모양 배설물의 주인은 사슴이나 산양, 또는 고라니일 수 있다. 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립환경과학원 생태복원과 최태원 박사는 “사슴이나 산양은 뿔을 날카롭게 유지하거나 영역 표시를 하기 위해 나무에 뿔을 간다”며 “나무를 긁은 자국이 땅바닥에서부터 30cm 높이 아래에 있다”고 말했다.

만일 긁은 자국이 40cm 이상이면 고라니일 가능성이 크다. 뿔로 비비는 사슴과 산양은 고개를 숙여야 하지만 송곳니로 긁는 고라니는 고개를 쳐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에 나무가 없다면 어떨까. 좀 지저분하지만 배설물 냄새를 맡으면 된다. 배설물에서 계피향이 나면 고라니나 노루의 것이다.

○ 너구리 발자국은 개와 다르다

“저기 사슴이다.”

사슴인지 고라니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한결 군은 마치 ‘보물섬’이라도 찾아낸 듯 기뻐했다. 두 사람을 발견한 고라니는 껑충껑충 뛰더니 멀리 달아나 버렸다. 보일 듯 말 듯하던 고라니를 찾아 걷다 보니 어느새 한강변에 다다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 발자국을 발견했다.

집에서 키우던 개의 발자국과는 뭔가 달랐다. 발가락 4개 중에서 가운뎃발가락 2개가 거의 붙어 있다. 바로 너구리의 발자국이다. 또 마치 비틀대는 것처럼 발자국의 배열이 산만하다.

뚜렷한 발자국, 흐트러지지 않은 배설물은 가까운 곳에 야생동물이 있음을 의미한다. 또 발자국에 포개진 또 다른 발자국의 모양을 통해 도망치는 동물과 뒤쫓는 동물의 긴장감을 느껴볼 수 있다.

이제 살아 숨 쉬는 동물과 대화하고 싶다면 동물원이 아니라 강변이나 주변 공원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서금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symbio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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