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도핑에 걸린 날… 동물 몸속은 유용 물질의 보고

  • 입력 2007년 10월 2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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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로야구에서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 도입한 도핑테스트 결과 다행스럽게도 선수들이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도핑테스트는 혈액이나 소변을 검사해 선수가 금지 약물을 복용했는지 확인하는 검사. 과거에 드물지만 돼지고기를 먹은 선수가 억울하게도 양성 판정으로 약물 복용을 의심받는 경우가 있었다. 과학자들은 돼지고기에 근육강화 작용을 하는 물질이 들어 있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 돼지에서 나온 중성 호르몬?

외국에서는 돼지를 키울 때 살을 찌우기 위해 불법으로 근육강화제를 먹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물질이 간혹 고기를 통해 사람 몸에 들어오면 소변에서 검출될 수도 있다.

돼지 호르몬이 검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돼지 정소에서 만들어지는 난드롤론이란 호르몬은 근육을 강화하고 생식기를 발달시킨다. 영남대 생명공학부 최인호 교수팀은 최근 거세하지 않은 돼지의 고기를 분석한 결과 이 호르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난드롤론은 사람의 몸에서도 극미량 만들어진다. 특히 임신한 여성의 혈액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는 연구도 있다. 물론 돼지보다는 1000배 정도 적은 양이다. 도핑테스트에서도 이를 감안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동현 도핑컨트롤센터장은 “혈액이나 소변 1mL에 난드롤론의 양이 2ng(나노그램·1ng은 10억분의 1g) 이하면 음성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난드롤론은 자성(여성)호르몬도 아니고 웅성(남성)호르몬도 아닌 중성호르몬으로 여겨진다. 동물의 몸에서 웅성호르몬은 효소가 작용해 자성호르몬으로 화학구조가 바뀐다. 사람은 이 과정에 쓰이는 효소가 하나인 반면 돼지는 최소한 3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2개의 효소가 특히 난드롤론을 많이 생성한다. 결국 난드롤론은 자성호르몬과 웅성호르몬 사이에 생기는 중간물질 중 하나라는 얘기다.

하지만 돼지에게서 유독 이런 특이한 호르몬이 많이 생기는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는 성장이나 생식기 발달에 관여할 것이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돼지는 다른 동물에 비해 짧은 기간에 빨리 성장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출생 후 1∼3주 된 새끼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10%까지 자라 6개월이 채 지나기 전에 도축 체중인 110kg에 다다른다.

○ 동물호르몬을 의약품, 향수, 축산업에 활용 가능

동물의 몸속에서 생성되는 호르몬은 사람의 호르몬과 기능은 유사하지만 구조나 분비량이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다. 과학자들은 이런 호르몬들을 찾아내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말과 돼지에 풍부한 난드롤론은 현재 의약품 성분으로 사용되고 있다. 암이나 화상,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으로 인해 근육이 많이 손상된 환자에게 투여하면 근육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있다. 일부 남성은 근육 강화나 노화 방지를 위해 쓰기도 한다.

사람 몸에 난드롤론과 비슷한 스테로이드 계열의 물질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오면 자칫 심혈관 질환이 생길 수 있다. 최인호 교수는 “말이나 돼지가 사람보다 난드롤론이 훨씬 많은데도 심혈관 질환에 잘 걸리지 않는 이유를 찾아 내면 심혈관 질환 치료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포유류의 뇌에서 분비되는 생식호르몬의 일종인 성선자극방출호르몬(GnRH)은 동물마다 기능은 같지만 구조와 효능이 약간씩 다르다. 이들 호르몬의 구조를 사람에 맞게 변형시키면 생식기능을 조절하는 의약품으로 개발할 수 있다.

남성 향수 성분 중 하나인 안드로스테논은 수퇘지가 암퇘지를 유혹하기 위해 분비하는 화학물질(페로몬)이다. 암퇘지에게는 향기일지 몰라도 돼지고기에선 이 물질이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식용 돼지는 이 냄새를 없애기 위해 어릴 때 거세를 한다. 돼지의 어떤 유전자가 안드로스테논을 만드는지 알아내면 거세하지 않고 유전자를 조작해 냄새를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돼지도 거세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전남대 수의학과 한호재 교수는 “동물 호르몬을 활용하려는 연구는 오랫동안 계속돼 왔다”며 “인수공통 질병 가능성에 대한 안전성 검증이나 윤리 문제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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