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가 만든 흙더미 밟지마오…암컷 유혹 위한 性的 신호

  • 입력 2004년 12월 9일 19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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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발농게 수컷이 집(구멍) 옆에 흙더미를 쌓은 후 집게발을 흔들며 암컷을 유인하고 있다. 이 흙더미가 수컷이 암컷에게 잘 보이려고 만든 구조물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사진제공 김태원
흰발농게 수컷이 집(구멍) 옆에 흙더미를 쌓은 후 집게발을 흔들며 암컷을 유인하고 있다. 이 흙더미가 수컷이 암컷에게 잘 보이려고 만든 구조물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사진제공 김태원
갯벌을 거닐다보면 바닷게들이 파놓은 구멍 옆에 흙이 쌓인 모습이 곧잘 눈에 띈다. 게가 집(구멍)을 짓느라 흙을 퍼낸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것일까.

서울대 생명과학부 박사과정생 김태원 씨는 한국 서해안 갯벌에 서식하는 흰발농게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이 구조물이 암컷을 유인하기 위한 수컷의 ‘성적 신호’라는 점을 밝혀 미국에서 발간되는 ‘갑각류생물학회지(JCB)’ 12월호에 소개했다. 흰발농게는 한국에 사는 농게의 일종으로 수컷이 커다란 집게발을 한 쪽만 갖고 있으며 몸의 길이는 1.5cm 정도다. 집게발 색깔이 유난히 희어 이름이 붙여졌다.

김 씨는 흰발농게의 번식기인 6월 초순부터 8월 중순까지 강화도 초지리 갯벌에서 수컷 20마리만 몰아 놓은 경우와 수컷 20마리를 암컷 10마리와 섞어 놓은 경우를 비교 관찰했다. 흥미롭게도 암수가 함께 있을 때 하루 평균 3, 4회 흙더미를 쌓았다. 하지만 수컷만 있을 때는 거의 쌓지 않았다.

김 씨는 “수컷은 흙더미를 쌓은 후 옆에 서서 커다란 집게발을 흔들며 암컷을 유인한다”며 “현재 후속 연구로 암컷이 왜 흙더미로 달려가는지 이유를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 연구를 지도한 최재천 교수는 “국내에서 갯벌 동물의 행동 연구는 거의 없었다”며 “수컷이 몸을 화려하게 치장해 암컷을 유인하는 사례는 흔하지만 흰발농게처럼 구조물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수컷의 구애행동이 밝혀진 이상 갯벌을 거닐 때 작은 흙덩어리라도 무심코 밟거나 발로 차서는 안 될 것이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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