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호기/"휴대전화 또 바꿔?"

  • 입력 2002년 9월 1일 18시 56분


요즘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필수품은 단연 휴대전화일 것이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휴대전화는 우리 생활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 왔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휴대전화는 게임을 즐기고 e메일을 주고받는 등 다목적 용도로 활용되는 미니 컴퓨터이기도 하다.

휴대전화가 처음 보급될 때는 그 크기가 무선전화기 정도였다. 당시만 해도 휴대전화는 부(富)를 은근히 과시할 수 있는 ‘상징자본’이었지만, 이내 대중적으로 보급되면서 성인이라면 누구나 소유하는 필수품이 되었다. 부피가 줄어들면서 이제는 손안에 감출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으며, 최근에는 영상까지 전달할 수 있는 휴대전화가 나왔다고 한다.

휴대전화가 가져다 준 이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동 중에 업무를 처리할 수도 있고, 약속 시간을 신축적으로 변경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말로 직접 하기 어려운 것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사려 깊게 전달할 수도 있다. 의사소통을 줄이는 다른 문명의 이기(利器)들과는 달리 휴대전화는 인간관계를 풍부하게 하는 효과까지 겸비한 기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휴대전화로 인해 새로운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휴대전화가 환경오염과 자원낭비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게 그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올해 3월 현재 국내 이동통신서비스 가입자 수는 3000만명 정도이며, 지난 해 폐기된 휴대전화 수는 1290만대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이 휴대전화 안에 재활용이 가능한 귀금속은 물론 납 수은 비소 등 각종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폐기된 휴대전화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국제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6월과 7월 유엔환경계획(UNEP)과 바젤협약(유해폐기물의 국가간 이동 및 처리에 관한 국제협약) 사무국은 폐휴대전화 회수(回收) 및 재활용프로그램에 한국 제조업체가 동참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 달 중순에는 우리 정부에 이에 대한 협조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환경부는 기업이 폐휴대전화를 회수하고 재활용하는 ‘생산자 책임 재활용제도’를 추진하고 있지만, 산업자원부와 해당 기업들은 이 제도의 도입 시기를 늦춰 줄 것을 원하고 있다.

다른 전자제품과 비교해 폐휴대전화는 부피가 작기 때문에 환경오염에 그렇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매년 급증하는 폐휴대전화가 함부로 버려질 경우 토양 및 수질 오염에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하기도 어렵다. 환경오염을 낳는 주범 가운데 하나는 ‘나 하나쯤이야 어때’ 또는 ‘이 정도가 무슨 영향을 주겠어’ 하는 의식에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폐휴대전화가 급증하는 것은 우리 소비문화의 일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휴대전화 교체시기는 매우 빠르다고 한다. 조사 대상의 80%에 가까운 사람들은 2년 안에 휴대전화를 교체한 경험이 있으며, 1년 안에 교체하는 사람들도 20% 정도가 된다고 한다. 휴대전화를 교체하는 이유로는 절반 정도가 고장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그 뒤를 이어 새로운 모델이 나왔거나 기능에 불만을 갖는 경우가 14%를 차지했다.

고장이 나서 휴대전화를 바꾸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고장이 잦다면 해당 업체가 좀더 견고한 제품을 만들고 애프터서비스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고장이 날 경우 이를 고쳐 쓰기보다는 신제품으로 쉽게 바꾼다는 데 있다. 더구나 TV 화면을 장식하는 현란한 휴대전화 광고들은 무의식에 잠재한 끝없는 소비욕망을 부추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가 미덕이란 말이 있듯이 신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 소비가 무분별한 낭비에 가까운 것이라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과 같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과 이미지의 소비 욕망은 끝없는 것이어서 이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늘의 신제품은 내일이면 벌써 낡은 제품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필요한 것을 합리적으로 구매하고 이를 소중히 사용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건강한 소비문화이자 소비윤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방영되는 TV의 한 시트콤을 보면 주인공인 아버지는 무선전화기 정도의 휴대전화를 갖고 다녀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한때 큰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냉장고를 갖고 다니느냐’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었다. 아무리 변화하는 사람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시대라 하더라도 검소와 절제가 의미를 상실한 가치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새삼 건전한 소비문화와 윤리가 요청되는 시점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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