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性매매 급속 확산…10대서 30대까지 오염

  • 입력 2002년 8월 21일 18시 32분


최근 청소년 성매매를 하다 붙잡힌 한 여성이 서울지방경찰청 여성계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 박영대기자
최근 청소년 성매매를 하다 붙잡힌 한 여성이 서울지방경찰청 여성계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 박영대기자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광주에서는 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학까지 나온 30대 여성이 해외어학연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인터넷 성매매를 하다 붙잡혔다. 그간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가 이젠 20, 30대 일반여성들에게까지 보편화되고 있다. 인터넷 성매매의 실상과 대책을 살펴본다. 》

지난달 24일 오후 11시경 회사원 A씨(32)는 인터넷 B채팅사이트 대화방에 ‘서울:조건-여자’라는 이름의 방을 개설했다. 그러자 10분도 채 안 돼 ‘어디에 있느냐’는 쪽지가 날아왔다. ‘서울 종로’라고 답신을 보내자 ‘몇 살이냐’, ‘결혼했느냐’고 묻는 쪽지들이 다시 왔다.

이후 서로간에 몇 번의 쪽지가 오간 뒤 ‘25 가능해요?’라는 메시지가 왔다. 성(性) 관계를 갖는데 25만원을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몇 번의 흥정 끝에 20만원으로 가격을 결정하니 상대방에서 서울 지하철 신촌역 6번 출구에서 기다리라고 통보했다.

오후 11시50분경 한 여성이 출구에 나타났다. 나이는 27세이고 이름은 ‘김○○’라고 밝힌 여성은 아무 말 없이 여관이 밀집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간 A씨가 직업을 묻자 이 여성은 “인근 조그만 무역회사에서 경리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이 처음이냐고 묻자 “처음처럼 보이냐”며 “친구들과 인터넷 채팅을 하다 이런 게 있는 걸 알았다”고 답했다.

이 여성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언니, 회사일 때문에 못 들어가. 내일 보자”며 끊었다. A씨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자 “대학을 다니는 동생 학비도 필요하고…”라며 말을 흐렸다.

사이버 공간에서 성을 사고 파는 인터넷 성매매가 20대와 30대 일반여성들에게까지 급속히 번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인터넷 성매매의 공급자가 주로 10대 청소년이었지만 최근에는 번듯한 직장을 지닌 20대와 가정이 있는 30대 주부까지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생활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인터넷 채팅방을 기웃거리다 조건이 맞는 사람을 만나면 거리낌없이 ‘부업’에 나선다.


지난달 24일 오후 11시반경 회사원 B씨(30)는 인터넷 S채팅사이트에 ‘아르바이트 구함’이라는 방을 만들었다. 조금 뒤 한 여성이 들어와 밀린 방값이 필요하다며 15만원을 요구했다.

다음날 오전 1시반 B씨는 약속 장소인 인천 연수구 선학역에서 상대 여성을 만났다. 흰색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온 이 여성은 25세이고 서울 강남 서울벤처벨리의 정보통신 관련 회사에 다닌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2년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 여성은 지난해 말부터 씀씀이가 커지면서 카드대금을 내기 위해 한 달에 3, 4일 ‘알바(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경험’이 많은 친구의 권유에 따라 별 거리낌없이 이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광주에 사는 주부 황모씨(37)는 인터넷 성매매를 통해 김모씨(39)를 만나 내연관계로까지 발전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황씨는 친정이 어려워지자 지난해 말부터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만난 남자를 상대로 성관계를 갖고 돈을 벌었다. 황씨는 부부관계와 내연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인터넷을 통해 계속 성매매를 했다.

하룻밤의 쾌락을 찾는 남성들은 그동안 10대들이 즐겨 찾는 인터넷 채팅방을 이용했지만 이제는 20대와 30대들이 모이는 방에서 주로 파트너를 찾는다.

지난달 24일 오후 5시경 G인터넷 채팅사이트의 ‘20대방’에는 성을 사려는 남성들이 개설한 방으로 차있었다. 여성이 만든 방도 10여개 눈에 띄었다.

‘2시간 15만원, 하룻밤 30만원’ 식으로 가격을 명시한 방도 있고 ‘167, 55, 85B’처럼 신체 조건을 내건 방도 눈에 띄었다.

인터넷 성매매 연령이 10대에서 20, 30대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 경찰은 청소년 성매매 단속강화를 한 원인으로 꼽았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강승수(康承秀) 대장은 “인터넷 성매매는 90%가 남성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이뤄진다”며 “청소년 성매매 단속이 강화되면서 성 수요자들이 20, 30대 방으로 옮겨가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성 공급 연령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청소년 성매매를 집중 수사해온 서울 서초경찰서 김종군 경사는 “요즘 인터넷 성매매의 특징은 보편성”이라며 “성을 파는 여성이나 남성들 모두 특정한 직업이나 계층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윤락여성보호시설인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은성원’의 최정은 사무국장은 “이곳에 오는 여성 중 상당수는 용돈을 벌 목적으로 인터넷 성매매를 하다 ‘직업여성’으로 전락한 경우”라며 “최근 인터넷이 윤락을 확산시키는 도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티켓다방에 취직한 18세 정화▼

정화(가명·18·여)는 4월 경기도의 한 다방에 취직했다. 차 배달과 함께 성매매까지 하는 이른바 티켓다방이었다. 지난해 9월 원조교제를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가 풀려난 지 7개월 만이었다.

정화가 고교 1학년이던 2000년 가을 부부싸움이 잦던 부모가 이혼했다. 정화의 아버지는 지방으로 내려갔고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는 아이가 둘인 남자와 재혼했다.

외동딸인 정화는 갈 곳이 없었다. 결국 자퇴를 했고 친구들 집과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네 오빠들의 자취방을 전전했다.

정화가 인터넷을 통해 성매매를 알게 된 것도 이렇게 머물던 한 친구 집에서였다. 평소 자주 들어가던 인터넷 B채팅사이트에서 ‘조건-여자-나와라’는 이름의 대화방에 들어갔다. 상대방은 ‘친구도 같이 나오면 50만원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친구 부모의 눈치를 보며 살기도 힘들었던 정화는 친구와 같이 나갔다. 이상한 행위를 요구하는 30대 회사원과의 괴로운 시간이 지나고 손에 쥔 돈은 25만원. 이 돈으로 일단 자취방을 얻었지만 돈이 떨어지자 다시 인터넷 사이트로 들어가 성매매를 원하는 남성을 찾았다. 그러다 청소년 성매매를 단속하던 경찰에 적발됐다.

잘못을 뉘우친다며 울면서 사정을 해 훈방됐지만 정화가 갈 곳은 여전히 없었다. 고교 중퇴에 미성년자라는 조건으로는 변변한 일자리조차 가질 수 없었다. 알고 지내던 술집 웨이터 오빠의 소개로 일당 6만원을 받고 술집에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손쉽게 돈이 들어오는 원조교제의 유혹은 너무나 강했다. 경찰에서 풀려날 때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몇 차례 더 돈을 받고 원조교제를 했다. 하지만 자취방값조차 모으기가 쉽지 않아 결국 인터넷을 통해 만난 한 20대 남성이 소개한 지방의 다방에 취직하게 됐다.

이 남성은 “티켓을 끊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정화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정화는 다만 오래 머물 곳을 찾을 뿐이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1:1 은밀한 거래, 경찰 속수무책▼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는 이제 보편화했다. 문제는 차단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가 20, 30대 여성으로까지 옮겨가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속수무책이라고 말한다. 경찰도 청소년 성매매 단속이 우선이어서 성인들의 성매매에 대해서는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김강자(金康子)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윤락행위방지법에 저촉되는 행위이므로 당연히 단속대상이지만 인터넷 채팅방을 대상으로 일일이 수사하지 않는 이상 적발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과장은 “인터넷 밖의 매매춘은 전업형이고 일정한 ‘적선(赤線)지대’ 안에서만 이뤄지지만 이제는 인터넷으로 인해 전국의 일반 생활공간이 ‘사창가화’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다”고 털어놨다.

기존의 성매매가 강요나 감금의 형태로 강제적인 부분이 많았다면 인터넷 성매매는 어떤 알선책도 없는 ‘1 대 1의 자발적 성매매’라는 점에서 그만큼 단속과 대책 마련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

조영숙(趙永淑) 한국여성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사람들은 인터넷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상현실처럼 생각하지만 결국 성매매는 현실에서 이뤄진다”며 “인터넷의 특수성을 포괄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인터넷 규제가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의 효과적인 차단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추병완(秋炳完) 춘천교육대 윤리학과 교수는 “인터넷은 다양한 욕구를 실현시키는 하나의 기술적 장치일 뿐 그 자체가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의 주체는 아니다”고 말했다.

또 김성이(金聖二)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터넷 정보공급업체가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된다”고 지적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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