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낳게해준다는 시술은 사기"…대법 6년공방 종지부

  • 입력 2000년 2월 7일 00시 17분


산부인과 의사 김모씨(53)는 89년부터 5년간 아들을 점지해 달라며 찾아온 1000명이 넘는 주부들에게 독특한 처방을 하다 법망에 걸렸다.

김씨의 처방은 나름대로의 논리를 지녔다. 우선 ‘통로변경술’이라는 이름으로 자궁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자궁내막시술’을 하고 월경 후 5일째부터 5일간 배란유도제를 투약했다. 그 후 13일째부터 3일간 부부가 성관계를 갖도록 한 뒤 질 검사를 통해 정자가 발견되면 수정란 착상제를 투여하는 방식.

자궁내막시술은 자궁을 알칼리성화해 남성인 Y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수정란에 잘 진입토록 하고 이어진 처방들도 Y염색체의 수정란 착상을 돕는다는 이론이었다. 김씨는 유명해졌다. 94년까지 1343명의 주부가 병원을 찾아와 4억5000여 만원의 치료비와 약값을 냈다.

그러나 호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검찰은 김씨의 시술행위가 ‘사기’라며 94년 김씨를 구속 기소했다. 당시 수사관계자는 “파악된 고객 중 김씨의 시술로 효험을 본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난다”고 전했다. 이후 김씨와 검찰은 대법원까지 6년 동안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였다.

김씨는 법정에서 “고객들에게 틀림없이 아들을 낳는 방법은 아니고 다만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고지했고 대부분 고객이 불임환자였으며 아들을 가려 낳게 해달라는 20여명의 요청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시술해 상습사기가 아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김씨의 주장이 ‘거짓말’이라며 검찰의 손을 들었다.

서울고법 형사4부는 지난해 6월 “관련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김씨가 ‘아들을 낳게 해주겠다’며 1000여명에게 시술한 것이 사실”이라며 “자궁내막시술을 한다고 자궁의 산도(酸度)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고 나머지 시술도 아들만 선별적으로 수정시키는 방법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이용훈·李容勳대법관)는 3일 “의학상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시술 전체가 아들 낳기에 필요한 것처럼 거짓말을 한 것이나 이미 자신이 아들을 낳게 해 준다고 믿고 찾아온 고객들에게 딸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지 않은 것 등은 사기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김씨의 처방이 나름대로 근거가 일부 있지만 ‘산신령’처럼 아들을 점지해주는 것처럼 고객들을 속였다는 점에서 상습사기 혐의는 결국 유죄(징역8월에 집행유예 2년)로 확정됐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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