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文-金-트럼프-시진핑, 게임의 법칙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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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北亞 걸린 ‘그레이트 게임’
‘核 올인’ 두려운 김정은에, 시진핑 “美國을 믿지 마라”
판 깨지면 뒷감당 걱정하는 金… ‘완전 비핵화’ 진정성 믿는 文
“게임은 결국 힘” 트럼프의 미소

박제균 논설실장
박제균 논설실장
그렇다. 게임이다. 일찍이 ‘거래의 기술’이란 책까지 펴낸 게임의 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대로 “모두가 게임을 한다(Everybody plays games)”. 동북아 미래가 판돈으로 걸린 ‘그레이트 게임’이다. 게임을 주도하는 자는 단연코 트럼프다. 맞상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문재인 대통령은 어떻게든 게임을 성사시키려는 매치메이커다.

게임의 제왕 트럼프는 김정은과 포커를 치면서도 김정은보다 그의 뒤편에 서 있는 사람을 자주 쳐다본다. 트럼프 자신이 ‘세계 최고의 포커플레이어’라고 평가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이 게임판에 끼지 못한 한 사람이 있다. 멀리서 트럼프에게 훈수도 두지만, 도무지 포커판에 붙여주질 않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다.

김정은은 할아버지부터 3대에 걸쳐 이 게임을 학수고대해 왔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하려니 두렵다. 과연 내가 가진 패를 올인(다걸기)해도 되는 걸까. 핵과 미사일을 다 내놓아도 내 권좌는 안전할까. 미국의 체제 보장 약속을 믿고 다 내놓았다가 목숨까지 잃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부하들도 건의한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불안한 마음에 시진핑이 있는 중국 다롄까지 달려갔다. 시진핑은 “미국을 믿으면 안 된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 “올인 하지 말고, 단계적으로 하라. 내가 뒤는 봐줄 테니.”

그래서 까던 패를 일단 덮은 김정은. 화장실 다녀온다고 포커판을 비웠다. 트럼프에게는 ‘그렇게 패를 한꺼번에 던지라고 압박하면 판을 깰 수도 있다’고 넌지시 흘리며. 그런데 이게 웬걸. 트럼프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태도 불량이다, 게임할 준비가 안 돼 있다’면서. “네가 가진 패가 세다고 얘기하는데, 내가 가진 패는 너무 막대하고 강력해서 신께 이 패를 사용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김정은 각하’라면서 점잖게 협박하니 더 무섭다.

당황한 김정은. 어, 이건 아닌데…. 할아버지부터 써온 ‘벼랑 끝 전술’은 항상 통했는데, 나보다 더 ‘미친 놈(mad man)’이 있다니. 그렇다고 이제 와서 판을 덮고 일어설 순 없다. 부하들도, 아니 이젠 인민들까지도 내가 이 게임에서 승리해 우리도 먹고살 만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판이 깨지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나. 핵실험장도 보란 듯이 폭파했는데….

별수 없이 김정은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입을 빌려 북한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메시지를 트럼프에게 전달했다. “태도 불량은 오해다. 그런 오해야말로 이번 게임의 성사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도 김정은은 불안했다. 부랴부랴 매치메이커인 문 대통령에게 연락했다. 저번에 만났던 판문점에서 다시 만나자고. 미국과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분풀이 상대로 삼곤 했던 남측이지만,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문재인을 만난 김정은. “나, 이번엔 정말 다 던질 각오가 돼 있다. 그런데 트럼프의 보장 약속을 믿을 수 있는 건가.” 문재인은 김정은의 진정성을 믿는다. 선대(先代)들처럼 죽어도 핵을 포기할 수 없다면 이렇게까지 매달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문재인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 트럼프도 “김정은이 먼저 게임을 요청했다고 보고받았다”고 했고, 김정은의 수하인 최선희라는 여자도 “트럼프가 먼저 포커판 벌이자고 했다”고 떠벌리면서 매치메이커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오죽 답답했으면 판이 깨지자 “다른 사람 거치지 말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직접 대화하라”고 했을까.

유일하게 웃고 있는 한 사람, 트럼프다. ‘지금까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통한 건 아직 임자를 못 만났기 때문이다. 내 이름이 포커 카드를 뜻하는 트럼프인 줄 몰랐나.’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그때그때의 운에 따라 한두 번 포커 게임에서 이길 순 있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는 두둑한 밑천을 가진 사람이다. 그게 결국 게임의 판도를 좌지우지하는 힘이다. 힘도 없는 사람들이 심판을 보겠다느니, 운전대를 잡겠다느니 하는 건 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장난이다. 끊임없이 뒤통수 때리기를 일삼는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건 힘밖에 없다. 김정은이 다시 게임하자고 내게 매달리는 것도 결국 압박 때문이다. 그런데 딱 하나 걸리는 게 있다. 김정은 뒤에 서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은 저 자가….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트럼프#김정은#문재인#그레이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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