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5월 날씨는 봄처녀 마음을 홀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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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5월이면 연노랑, 분홍, 하늘색 등 가볍고 부드러운 봄 색깔의 옷들이 거리의 쇼윈도에 가득하다. “파스텔 톤 옷은 차분한 눈빛과 흰 피부를 가진 사람이 입어야 잘 어울려요.” 부드러운 색의 옷을 사고 싶었는데 아내는 아니란다. 매장을 나오는 아내의 목소리와 표정에 생기가 묻어나는 걸 보니 5월이다.

5월이 되면 우리네 주변은 활기로 넘쳐난다. 철쭉과 진달래의 화려한 색깔처럼 동물들도 화사한 표정으로 바뀐다. 동물원에 가면 꿩은 볏을 붉게 물들이고, 공작은 수놈이 암놈 앞에서 멋지게 날개를 편다. 코끼리도 힘차게 콧바람 소리를 내고 사자도 눈을 번득이며 돌아다닌다. 과학자들은 동물들의 이러한 변화가 햇빛이 강해지면서 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지고 신경이 자극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조시간이 길어져 눈으로 들어간 햇빛이 뇌하수체를 자극하고 이것이 성(性) 샘에도 전달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도 봄이 되면 변한다. 예전의 고향마을에서는 봄이 되면 ‘순진한 처녀 가슴 울렁울렁’이라는 말이나, ‘앞마을 순이가 봄바람에 바람났네’ 등의 소문이 나돌곤 했다. 이런 소문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봄철의 햇빛과 따뜻한 봄바람은 사람의 간뇌를 자극해 성호르몬을 많이 분비시킨다. 이 호르몬은 사람을 이성적으로 만들기보다 감정적, 격정적으로 만든다. 특히 여자들에게 더 많이 분비되기에 봄이 되면 여자들이 더 예뻐지고, 가슴이 더워져 마음이 들뜬다고 한다.

시인 김억은 “봄은 이지(理智)가 아니고 감정(感情)이다”라고 했다. 소설가 박종화는 “봄을 잡아낚는 이는 사나이가 아니라 여자다. 여자는 사나이보다 감각이 예민하고 앞일을 재빠르게 내다보는가 보다”라고 말한다. “봄은 나에게는 취기의 계절, 광기의 계절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전혜린은 고백한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봄빛이 여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과학적인 이유는 몰랐지만, 봄만 되면 들뜨는 여자들의 심리는 알았던 것 같다.

우리네 소설 김유정의 ‘동백꽃’은 봄철 여자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 ‘나’는 순박한 농촌 청년으로 소작인의 아들이다. 어느 날 우리 집 마름 딸인 점순이 찾아와서는 따뜻한 감자를 ‘나’에게 내민다. ‘나’는 그녀의 성의를 거절한다. 다음 날부터 점순은 우리 집 씨암탉을 못살게 군다. ‘나’는 우리 집 수탉이 점순네 수탉에게 당하는 것에 약이 올라 점순네 수탉을 때려 죽인다. 점순은 자기 집 닭을 때려 죽였다며 ‘나’를 위협한다. 결국 점순은 ‘나’에게 앞으로 매정하게 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그러고서 둘은 노란 동백꽃 속으로 파묻히고 정신이 아찔해진다.”

5월에는 부드럽고 상쾌한 바람에 사랑까지 실려 오는 훈풍(薰風)이 분다. ‘춘소일각치천금(春宵一刻値千金)’이라는 말이 있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시구에 나오는 것으로 “훈풍이 산들산들 불어와 달빛마저 몽롱해지는 밤, 꽃향기에 마음도 들떠 그냥 잠을 청하기가 차마 아까운 밤이네. 이런 분위기는 천금을 주더라도 꼭 사고 싶어라!”는 뜻이다. 서양 사람들은 5월의 날씨 좋은 밤을 ‘백만 달러의 밤’이라 부른다. 오랜만에 아내와 밤이 늦도록 데이트해야겠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한국기상협회 이사장
#날씨#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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