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구자룡]93세 마하티르의 총리 재도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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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을 하는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운데). 여당 출신이었던 그는 정치 후배인 나집 라작 현 총리의 부패 의혹을 비판하며 야당 후보로 나섰다. 사진 출처 마하티르 페이스북
선거운동을 하는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운데). 여당 출신이었던 그는 정치 후배인 나집 라작 현 총리의 부패 의혹을 비판하며 야당 후보로 나섰다. 사진 출처 마하티르 페이스북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노욕(老慾)인가, 전설의 복귀인가.’

올해 93세인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가 다음 달 9일 치러지는 총선(하원 222석 선출)에 출마했다는 소식에 “우리가 아는 그 마하티르 맞아? 아들이나 손자 아니고?” 하는 반응이 나왔다. 그는 15년 전인 2003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었다.

그는 올해 1월 7일 야당 연합인 ‘희망연대(PH·Pakatan Harapan)의 총리 후보로 선출됐다. 최근 자신의 고향이자 총리 시절 관광특구로 개발했던 랑카위 지역구 출마를 공식 선언한 그의 페이스북에는 어느 젊은 정치인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 내용이 시시각각 올라오고 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3월 22일 자신의 건강을 주제로 한 포럼이 열리자 갑자기 나타나 “나이는 시간이 지나면 먹는 물리적 나이와 신체적 나이가 있는데 두 가지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정신이 말짱하고 적어도 노망이 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마하티르는 1981년 7월 전임 후세인 온 총리가 건강 악화로 사임하자 총리직을 물려받은 뒤 연합 집권 여당인 ‘국민전선(BN·Baisan Nasional)’ 후보로 다섯 번의 총선에서 모두 승리하며 22년간 총리를 지냈다. 외과 의사이자 아버지가 전직 교장인 첫 시골 평민 출신 총리였던 그는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총리와 함께 주목받는 아시아 지도자였다.

첫 총리 취임 3개월 만에 과거 식민 지배 국가였던 영국 제품 불매 운동을 전개하는가 하면 일본과 한국의 성공 경험을 배우자는 ‘동방 정책’을 펴 주목을 끌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는 서구의 헤지펀드를 ‘논밭을 습격하는 메뚜기 떼처럼 아시아 전역을 휩쓸며 주식과 통화를 단기 공습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하고 아시아의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요한다며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조치를 거부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자진해서 물러났지만 ‘뒷방 원로’로 있지는 않았다. 퇴임 후 왕성한 블로그 활동 등으로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쳤다. 이슬람 지도자 출신이면서 자신의 후임자로 발탁한 압둘라 바다위 총리에 대해 ‘무능하다’는 비판을 쏟아내 결국 물러나게 했다.

2009년 나집 라작 총리의 집권도 마하티르의 지지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2015년 나집 총리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로부터 테러 방지 지원 명목으로 거액을 받았다는 스캔들이 터진 뒤에는 퇴진 운동에 나섰다. 나집 총리가 2009∼2015년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45억 달러 상당의 나랏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나오자 “도둑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나집 총리는 “노욕에 휩싸인 마하티르가 정계 복귀를 위해 음모론을 조장하고 있다”고 맞섰다.

마하티르는 자신이 몸담으며 총리를 지냈고 195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래 줄곧 집권당이던 BN을 걷어차고 나와 2016년 8월 야당인 ‘말레이시아원주민연합당(PPBM)’을 창당했다. PH는 PPBM과 다른 군소 야당의 연합이다.

이번 총선에서 PH가 과반을 획득해 마하티르가 총리에 복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13개 정당 연합체인 BN은 독립 이후 줄곧 집권해 왔다. 총선을 앞두고 나집 총리는 ‘가짜 뉴스 방지 법안’을 통과시켜 자신의 비자금 스캔들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3월 말 통과시킨 선거구 재획정안은 최소한 BN에 10석은 늘릴 수 있도록 하는 ‘게리맨더링(자의적 선거구 획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게다가 월 소득 700달러(약 75만 원) 이하의 가정에 대한 보조금을 약 200달러(약 21만 원)로 늘리는 등 전 국민의 절반가량이 보조금을 받는 정책도 선거를 앞두고 내놨다. 나집 총리는 부친(2대)과 삼촌(3대)이 총리를 지낸 명문가 집안 출신이다.

그럼에도 여당 BN은 이번에 어느 때보다 힘겨운 선거를 치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나집 총리의 부패 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전설의 마하티르’가 뛰어든 데다 의석수도 2003년 총선에서 198석, 2008년 140석, 2013년 133석으로 점차 줄고 있기 때문이다.
 
구자룡 이슈&피플팀 기자·前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마하티르 모하맛#말레이시아#희망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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