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의 對話]“우리는 죽어야만 관심 받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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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 前 소방방재청장

이기환 전 소방방재청장이 소방차 등 각종 장비를 보며 화재 시 대피 요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전 청장은 경북 지방 소방관 공채 1기로 시작해 대구 북부소방서장,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제5대 소방방재청장(2011년 7월∼2013년 3월)을 지냈다. 아버지와 아들(대구 달성소방서 근무)까지 3대가 소방관으로 일한 ‘소방 가족’이다. 인터뷰는 대구 동부소방서에서 진행됐다. 대구=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기환 전 소방방재청장이 소방차 등 각종 장비를 보며 화재 시 대피 요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전 청장은 경북 지방 소방관 공채 1기로 시작해 대구 북부소방서장,서울시 소방재난본부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에서 제5대 소방방재청장(2011년 7월∼2013년 3월)을 지냈다. 아버지와 아들(대구 달성소방서 근무)까지 3대가 소방관으로 일한 ‘소방 가족’이다. 인터뷰는 대구 동부소방서에서 진행됐다. 대구=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 늘 그때뿐이다. 그들이 비명에 스러질 때마다 세상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그들의 열악한 처우와 푸대접을 안타까워하고, 정치인들은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너도나도 법 개정을 약속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면 크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소방관을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일명 ‘소방관 눈물 닦아주기법’(2016년 7월 발의)도, 현장에서 발생한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해주는 ‘소방기본법 개정안’(2016년 9월 발의)도 1년이 넘게 잠만 자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이기환 전 소방방재청장(62·현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사진)은 “오죽하면 ‘우리는 죽을 때만 관심을 받는 사람들’이란 푸념까지 나오겠느냐”고 말했다. 》
  
 
―수십 년간 소방관 인명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처우 개선 목소리가 높았지만 변화는 미미했다. 획기적인 처우 개선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소방이 지방 사무고, 99%의 소방관이 지방직으로 지방자치단체 소속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획기적인 처우 개선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국가 지원을 받기 위해 당정 협의를 하면 취지는 공감하면서도 기획재정부는 늘 ‘지방업무라 안 된다’고 했다. 지자체가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래서 소방관들이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얼마나 열악한가.

“불과 4, 5년 전만 해도 소방관들이 시장에서 파는 공장용 검은 고무장갑을 끼고 불을 껐다면 믿겠나? 방화 처리가 된 장갑이 아니다. 그냥 좀 두툼한 고무장갑이다. 내가 소방방재청장일 때 한 소방대원이 불을 끄다 장갑에 불이 붙어 손에 온통 화상을 입은 일이 있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방화 처리가 된 장갑을 보급하기 시작했는데 아마 전국적으로 보급이 된 것은 1, 2년이 채 안 될 것이다.”

―나로호를 발사한 게 2009년인데 일부 지역에서는 1, 2년 전만 해도 고무장갑 끼고 불 껐다고?


“믿기지 않을 거다. 2001년 소방관 6명이 순직한 서울 홍제동 화재사고 이전에는 방수복과 안전화, 안전모를 제외한 나머지는 사비로 사야 했다. 그나마 2명에 한 개씩이었다. 2교대 근무니까 아침에 퇴근하면서 인수인계하고 가는 거지. 내가 2002년 대구 북부소방서장일 때만 해도 공기호흡기가 없어서 마스크 끼고 지하실에서 불을 껐다. 그냥 일반 흰 마스크다. 지금은 개선됐지만 2002년까지 감기 걸리면 쓰는 마스크를 쓰고 지하실에서 불 껐다는 게 상상이 가나.”

―충분한 지원도 못 해주면서 지자체장들은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왜 반대하나.

“광역시도 공무원의 절반가량이 소방공무원이다. 그런데 공무원 수가 줄면 교부세가 준다. 교부세는 공무원 수에 비례해 주기 때문이다. 절반이나 줄면 엄청 타격이 크니까…. 또 지금은 시도지사가 지시하면 되는데, 국가직이 되면 대등한 관계에서 협의를 해야 하니까…. 지방화 추세에 국가직 전환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하기도 하고….”

―현재는 국가직 1%(소방청)와 99% 지방직(시도 소방본부)으로 나뉘어 있는데 업무상 불편함은 없나.

“큰 사고가 났을 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데 애로가 많다. 지금도 소방 업무는 국가 업무가 60%, 지방 업무다 40% 정도 된다. 서울에서 큰 사고가 나면 서울 소방관만 출동하는 게 아니라 경기 인천 등 다른 곳에서도 지원을 나간다. 예를 들어 소방청에서 지시가 온다고 바로 출동할 수 없다. 시도지사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만약 시도지사가 안 된다고 하면 못 나간다. 그런 게 비일비재하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직업인데 생명수당은 좀 되나.

“소방관들은 ‘갑종 위험수당’(일명 생명수당)을 받는데 작년 1월에 1만 원 올라 6만 원이 됐다. (웬만한 회사 교통비도 안 되는데?) 그나마 많이 오른 것이다. 내가 일할 때는 2만 원이었다.”

(소방관 위험수당은 2002년 3만 원, 2005년 4만 원, 2008년 5만 원이었다 8년 만인 지난해 6만 원이 됐다.)

―출동한 소방관, 구급대원들을 때리는 사람이 있다는데, 때리는 이유가 뭔가?

“당사자가 술 먹고 때리는 경우도 있고, 가족 같으면 늦게 왔다고 때리기도 한다. 일단 구급차에 태우면 흔들려 떨어지지 않게 몸을 고정시키는데 그러면 또 ‘왜 묶느냐’며 때리기도 한다. 구급대원 중에는 여자 대원이 많은데 이들을 때리기도 하고…. (맞았는데 가만히 있나?) 가만히 있어야지 어쩌겠나. 뺨 한 대 맞는 정도는 보고 안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 7월까지 전국의 소방관들이 당한 폭행·폭언은 870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참고 넘어간 경우를 포함하면 실제는 이보다 월등히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소방·구조 업무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 같다.


“일부 지역에서는 개나 고양이를 구하다 다치면 보상을 안 해준다. 사람을 구하려다 다친 게 아니라는 것이지. 그렇다고 신고가 들어왔는데 안 나갈 수도 없지 않나. 집값 떨어진다고 소방서 못 짓게 하는 사람들도 있고….”

―소방서가 집값을 떨어뜨린다고?

“서울에 유일하게 금천구에 소방서가 없다. 그래서 소방서 건립을 추진했는데 시끄럽다고 주민들이 반대해 건립이 늦어지고 있다. (뭐가 시끄럽다는 건가?) 출동할 때 사이렌 울리니까…. 동네가 시끄럽다는 거지. 그래서 주택가에 있는 소방서들은 출동할 때는 사이렌 끄고, 큰 도로에 진입해서야 사이렌을 울리는 곳이 많다. (그게 말이 되나?) 말이 안 되지만 어쩌겠나…. 주민들을 무시할 수도 없고….”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일부 주민이 금천소방서 건립을 반대한 명목적인 이유는 ‘지역 발전 저해’다. 당초 예상보다 건립은 늦어졌지만 현재는 합의가 이뤄져가고 있는 상태로 내년 말쯤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면 큰 도로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일반 차량들이 모르기 때문에 안 비켜 줄 것 아닌가. 결과적으로 출동이 늦어지지 않나.

“사이렌은 끄고, 경광등과 소방차에서 방송으로 비켜 달라고 한다. 큰 도로변은 땅값이 비싸 짓기 어렵고, 그래서 큰 도로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주택가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는 늘 벌어진다.”

―현장에서 가장 답답하거나 억울한 게 뭔가.

“정확히 모르면서 말하는 것이다. 화재 진압은 안전한 곳에서 할 수가 없다.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샤워하는 게 아니지 않나. 항상 가장 위험한 곳, 곧 무너질 것 같은데, 그런 자리에서 물을 뿌리고 불을 꺼야 한다. 그런데 그러다 소방관이 다치거나 사망하면 정치권이나 위에서는 ‘왜 그런 위험한 곳에 들어갔느냐’며 질책한다. 그 자리에 서지 않으면 불을 끌 수가 없다. 주민들도 현장에서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일반 주민들이 왜?


“불이 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그리고 잘 모르면서 너도나도 한마디씩 한다. 안에 누가 있다느니 하면서…. 그 말을 듣고 소방관들이 안 들어갈 수가 없다. 비록 나중에 아닌 것이 되더라도. 앞서 말한 서울 홍제동 참사가 그런 경우다. 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소방관 6명이 구조하러 들어갔다가 집이 무너져 모두 숨졌다. 실제 그 아들은 먼저 빠져나왔는데….”

―소방에 대한 인식이 낮은 데는 역대 청장들의 출신 문제도 있지 않을까? 대부분 행정안전부 고위 간부 출신이 많던데….(우리나라 소방조직은 1992년 시도자치소방에서 2004년 소방방재청, 2014년 국민안전처 내 중앙소방본부, 올해 소방청 체제로 변해왔다.)

“소방방재청 이후 역대 청장 중에 현장에서 불을 꺼본 소방직 출신이 현 조종묵 청장과 나, 최성룡 전 청장 등 3명뿐이다. 나머지는 행안부 고위 간부 출신이다. 마인드가 아무래도 소방보다는 행안부 쪽일 수밖에 없지 않나. 지금은 소방청이 독립기관이라 청장 차장이 모두 소방직 출신이지만, 소방방재청 시절에는 정부조직법에 청장이 소방직이면 차장은 일반행정직, 청장이 일반행정직이면 차장은 소방직이 해야 한다고 명기돼 있었다.”

―일반행정직은 소방·방재 분야는 잘 모르지 않나. 국방부라면 장관이 군인 출신이면, 차관은 일반 공무원이 해야 한다는 식인가.


“그렇다. 당시 소방방재청에는 소방직, 일반행정직, 기술직 등 세 부류가 있었다. 방재는 사실 토목이라 소방보다는 기술직 분야인데, 그래서 기술직을 배려한 것이라고는 했다. 그런데 정작 기술직으로 청장 된 것은 한 사람뿐이고 나머지는 일반행정직에서 했다. (상식적이지 않은 인사 같은데?) 상식적인 것은 아닌데, 우리가 안 된다고는 했지만 끝내 잘 안 된 것이지….”

―‘소방관 눈물 닦아주기법’과 ‘소방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보나.

“쉽지 않을 거다. 특히 국가직 전환은 지자체장들 중 반대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민·형사상 피해 면제도 발생한 모든 피해를 면제해 주는 게 아니라 ‘고의 또는 중대 과실이 없는 경우’에 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는 데 애로점이 있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 동시에 자신에게 과실이 없다는 증거를 모아야 하지 않나. 나중에 자신이 물어주지 않으려면…. 당연히 통과돼야 하고 필요한 법이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런 부분까지 섬세하게 조절됐으면 좋겠다. 결과적으로 나중에 보면 불필요한 행위였다고 해도 그 긴박한 재난 상황에서 일부러 부수고 피해를 주려는 소방관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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