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당신이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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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산울림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어느새 늦여름입니다.

북핵, 달걀, 경제 등이 불안을 더 부추기지만, 주말입니다. 휴식도 필요합니다.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듣습니다. 제철 음식이 있듯이, 제철 노래도 있죠. 이 노래는 너무 긴 곡이라 방송에서 잘 들을 수 없고, 그래서 잊힌 노래가 되었지만 잊혀지면 안 되는 명곡입니다.

‘꼭 그렇지 않았지만, 구름 위에 뜬 기분이었어’로 시작하는 노랫말에는 방금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 같은 이미지들이 펄떡거리고 있습니다. 줌인과 아웃을 되풀이하는,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의 몽롱한 이미지들을 따라갑니다. 이렇게 모네나 르누아르의 그림들 같은 이미지들의 슬라이드 쇼를 보여준 다음에는, ‘나머지는 당신들이 알아서 생각해 보슈∼!’ 하면서 기타만 주야장천 칩니다. 그럼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그 이미지들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것을 이해하고 배웁니다. 감각을 통해 입력된 정보를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들의 틀에 맞도록 가공시켜서,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야기들로 만들어 기억하죠. 정보만 제공했을 때 배우는 사람이 10%였다면 그것을 이야기에 담아서 제시하면 70∼90%가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뇌에 있는 이야기들의 기본적인 틀은 대부분 생활하며 겪는 문제들의 해결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틀들은 인물, 그 인물이 겪는 곤경, 그 문제의 해결이라는 세 요소로 형성됩니다. 그 요소들이 다양한 형태로 연결돼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죠.

문제는 정보들을 이야기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보들이 원래 알던 이야기에 잘 들어갈 수 있도록 가공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틀을 통해 새로운 것을 이해하니까 정보가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높죠. 피자를 미국 빈대떡이라고 이해하는 것처럼…. 또 이야기는 내게 유리하게 재편성되기 때문에 더 왜곡되곤 하죠. 법대로 하자고 하다가 불리해지면 법이 잘못된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생존을 위해 협업을 하며, 동료들의 의도를 잘 알고 알리기 위해 발달된 이야기 만들기 본능이 과잉으로 발달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부풀려지고, 그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곤 하죠. 주로 좋지 않았던 과거의 극복과 복수를 위한 이야기들입니다. 인간들이 그래도 가장 잘 아는 것이 자신들의 경험이니까요.

문제의 해결 방법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쉬운 이야기로 풀어서 들려주고,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확인하고, 잘 안 되었다면 화내지 말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다시 들려주는 것입니다. 들을 때도 자신의 경험에만 집착하지 말고, 모르면 물어봐야 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주고받으며 제대로 공유된 정보량을 늘릴수록 평화와 친밀의 가능성은 높아지죠.

사실 오늘 이야기의 의도는 올여름이 가기 전에 여러분이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한번 찾아 듣게, 그리고 이 노래를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한 번쯤 들려주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럴 것입니다. “얘들아, 이거 한번 들어봐. 멋있지 않냐? 옛날에 김창완이라는 어마어마한 작곡가가 있었어. 아니, 너희들이 아는 그 배우 말고….”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산울림#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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