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아파트서 살게됐다고 서러워한 적도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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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도시, 서울의 탄생과 궤적 ―근현대 서울의 집 (서울역사편찬원·서울문화마당·2017)

몇 달 전, 일본 유명 블로거가 작성한 글의 번역판이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스스로를 ‘단지(團地) 덕후(마니아)’라고 밝힌 그는 “아파트단지 왕국인 서울은 지하철 출구만 나오면 눈앞에 아름다운 아파트단지가 펼쳐지는 특이한 곳”이라고 적었다.

그의 지적대로 한국에선 ‘집=아파트’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만 해도 2015년 기준 280만 채에 달하는 집 가운데 절반을 훌쩍 넘는 58.6%가 아파트다. 기자도 태어나 지금까지 아파트에서만 살았기에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

‘근현대 서울의 집’은 아파트가 어떻게 서울에서 주거시설의 대명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1930년 서울 최초의 아파트인 ‘토요다 아파트(충정로 유림아파트)’가 선보인 뒤 약 40년 동안 아파트는 ‘비인기 품목’이었다. 대한주택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가 발간한 ‘주택’에 마포아파트에 입주한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열심히 노력해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으로 가겠다”고 말한 내용이 실릴 정도다. 당시만 해도 서울의 아파트는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서민주택’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 서울 아파트의 몸값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한강맨션아파트를 시작으로 고급 주택이라는 이미지를 확보하면서 ‘중산층 전용 주거시설’로 신분이 상승한 것이다. 여기에는 중산층의 짭짤한 투자수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부가 분양가를 시세보다 낮게 책정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이후 아파트는 세련된 도시생활을 즐기는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덧칠해졌다. 많은 소설 속에서 도시인들의 물욕과 사치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2017년 서울에서 아파트는 내 집 마련이 꿈인 서민들에게 ‘동경의 대상’으로 또 한 번 신분을 업그레이드했다. 하지만 집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변화가 마냥 박수 받을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아 아쉽다.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도서#근현대 서울의 집#서울역사편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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