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자기를 속이더라도 적당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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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빌리 조엘의 ‘Honesty’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동생 내외가 저희 집에 왔습니다. 고양이를 보더니 고양이가 점점 저를 닮아간다고 합니다. 얼굴이 둥글넓적해지고, 찡그리며 뭔가 떨떠름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 표정이 딱 저랍니다. 아내도 동의합니다.

―남편: 그래도 난 쟤처럼 까칠하지는 않잖아?

―아내: 쟤도 자기가 까칠하다는 사실을 몰라.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저의 성격을 솔직하게 말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겐 저의 말이 ‘자기기만’으로 들렸나 봅니다. 저는 진실은 잘 모르고 사실을 추구하는데, 그 사실도 자기중심적인 오류나 거짓인 경우가 많죠. 빌리 조엘의 말처럼 정직함은 정말 찾기 힘든 외로운 낱말입니다.

차를 마시며 뉴스를 보는데 논란과 의혹에 휩싸인 어떤 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장면이 나왔습니다. 채널을 돌리려는데 그분이 “저의 정직함을 보여주고자 나왔다”고 하시더군요. 순간 전 재채기를 하며 마시던 차를 뿜어내고 말았습니다. 깜짝 놀라서 사레가 들렸거든요. 이젠 젊다고 할 수 없는 분께서 아직도 자신이 정직하다고 믿으면서 그것을 증명해 보이시겠다니?!

조금 더 듣다 보니 본인도 깜짝 놀랐다고 하시더군요. 물론 다른 이유 때문에 놀라신 건데, 그랬다면 그 액수의 의도를 간파하고 받지 말았어야 했을 것입니다. 나라를 위했다면 더욱더 그랬어야 했겠죠. 하지만 제가 뭐라 할 자격은 없습니다. 제가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저도 어떻게 할지 자신이 없으니까요.

인간은 자기애적인 동물입니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처럼 각자 자기 자신이죠. 우린 이 세상의 평가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꽤 착하고 옳은 사람이라 믿어야 합니다. 그런 자아상을 지키기 위해선 작은 부정행위를 저질러도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도덕적 기준과 이기적인 욕망들 사이의 불균형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게 되니까요. 착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기만을 하는 이유입니다.

자기기만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속일 줄 아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누군가를 속여 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여 득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이죠. ‘할 수 있다!’는 하얀 거짓말을 스스로에게 해서 객관적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것처럼 말이죠. ○×의 디지털 논리가 아니라 애매모호한 현상과 개념들을 큰 집단으로 만들어서 그 집단에 속하는 정도에 따라 우열을 결정하는 ‘퍼지 논리’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기에 가능한 자기기만은 진화의 결과물 중에서 최고의 명품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어떤 약도 좋다고 남용하지 말고, 모르고 오용하지 말아야 하죠. 정신 치료의 가장 큰 목표 중의 하나는 ‘눈먼 자아’를 ‘열린 자아’로 만드는 것입니다. 눈먼 자아는 나는 모르지만 타인은 아는 자신이고, 열린 자아는 나도 알고 타인도 아는 나 자신이죠. 삶에 방해가 되는 눈먼 자아를 용기 내서 직면하고,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수긍하고 다른 긍정적인 것으로 상쇄시키려 노력하여 좀 더 좋은 열린 자아를 만드는 것입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빌리 조엘#honesty#자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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