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窓]뺑소니에… 거짓말처럼 조각난 행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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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물든 하늘을 보면서/둘이 걷다 돌아올 길을 잃어도/산들바람 출렁이고 자루 가득 마음 담아/그걸 오래 두어 남겨두기를…지금 이 모든 게 꿈이 아니길”

2014년 봄 김신영 씨(33)가 쓴 자작곡 내용이다. 신혼여행길에 아내 조모 씨(35)와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다. 김 씨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2016년 7월 3일 그는 노래 부르는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https://youtu.be/329fO7UvHdg)에 올렸다.



그러나 이제 김 씨는 아내 앞에서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 조 씨는 “그저 모든 게 꿈이길 바랄 뿐”이라며 울먹였다. 만우절이던 4월 1일. 김 씨는 거짓말처럼 가족의 곁을 떠났다. 만우절은 부부에게 특별한 추억의 날이기도 하다. 3년 전 만우절에 부부는 혼인신고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친구들이 우리 결혼한 걸 안 믿으면 어쩌지”라는 즐거운 걱정 속에 혼인신고를 다음 날로 미뤘다.

사고는 김 씨가 숨지기 13일 전인 지난달 19일 일어났다. 이날 김 씨는 평소처럼 아내와 30개월 된 아들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여보, 출근하고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현관을 나섰다. 그 뒷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오토바이를 몰고 가던 김 씨는 서울 마포구 성산초교 앞에서 정지신호를 어기고 시속 109km로 질주하던 승용차에 치였다. 가해 차량은 그대로 달아났다. 인터넷 설치기사인 김 씨는 당시 가정방문을 가던 중이었다. 나중에 검거된 승용차 운전자는 현역 육군 중사 장모 씨(24). 장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운전면허 정지 수준인 0.07%였다. 그는 육군 헌병대에 구속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김 씨는 꿈 많은 청년이었다. 인터넷 설치기사로 일하며 언젠가는 자신의 앨범을 만들려고 했다. 올해는 꿈을 꼭 이루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그래서 밤늦게 퇴근해도 항상 자작곡을 만들었다. 틈날 때면 지인들과 함께 작은 공연도 했다. 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 씨는 “남편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항상 긍정적으로 열심히 일했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서울에서 일하는 아내를 생각해 부산의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밤낮으로 일하며 자신도 힘들었지만 늘 “고마워” “사랑해”라고 말하며 아내를 다독였다. 사고가 발생한 날에도 김 씨는 아내가 좋아하는 연남동 쌀국수 집으로 외식을 가기로 약속한 뒤 일하러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유가족은 “정말 소박하고 행복했던 한 가정이 음주 뺑소니 때문에 무너졌다”며 “가해자 측이 사과 한마디 없이 합의 이야기만 앞세워 더 분통이 터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음주운전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이 꼭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남편에게 못다 한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아프게 보내서 너무 미안하고, 많이 사랑해줘서 고마워. 좋은 기억 준 것만큼 우리 아들이랑 열심히 살아갈게.”

구특교 kootg@donga.com·정지영 기자
#뺑소니#음주운전#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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