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갈등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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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김광림(1929∼)

빚 탄로가 난 아내를 데불고
고속버스
온천으로 간다
십팔 년 만에 새삼 돌아보는 아내
수척한 강산이여

그동안
내 자식들을
등꽃처럼 매달아 놓고
배배 꼬인 줄기
까칠한 아내여

헤어지자고
나선 마음 위에
덩굴처럼 얽혀드는
아내의 손발
싸늘한 인연이여

허탕을 치면
바라보라고
하늘이 저기 걸려 있다

그대 이 세상에 왜 왔지
―빚 갚으러


부부의 인연이란 하늘이 정해준 것이라지만 그 하늘이 원망스러운 때도 있다. 맺어진 부부의 연에는 악연도 있고, 좋은 연이라고 해도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부부가 바로 부부의 인연을 한탄하는, 그런 복잡한 사정에 놓여 있다.

아내는 빚을 졌고, 남편에게 숨겼다. 숨겼다기보다는 가슴이 두근거려 말을 못했겠지 싶다. 혼자 감당해 보려고 애도 썼을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온천으로 갔다. 아이러니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남편 입장에서 볼 때 아내는 원망스러운 사람이다. 그래서 헤어질 마음으로 마지막 여행을 나섰는데 온천이라니.

온천은 아내와의 심리적 갈등을, 아내의 육체에 남아 있는 세월의 흔적으로 바꾸어 주는 장소이다. 여행지에서 낯설게 재발견한 아내의 몸은 자식들을 등꽃처럼 낳아준 등나무였고 끊을 수 없는 칡이었다. 남편은 ‘갈등’으로서의 아내가 자신이 진 빚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빚을 갚아 나가기로 결심한다. 당신도 나도 빚을 갚는 것이 인생이라는 마지막 말에 진한 감동이 전해져 온다.

나민애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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