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교육부 눈밖에 나면 지원금 뚝… 중장기계획도 뒤집기 일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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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경쟁력 갉아먹는 ‘官의 갑질’]예산-인사권 내세워 쥐락펴락

정부 부처들은 국가의 예산과 정책을 마치 자신들의 힘인 양 휘두르며 산하기관이나 민간에 ‘갑질’을 하는 경우가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으로 국가 발전을 위해 집행해야 할 정책들을 부처와 공무원이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중앙부처 2곳의 업무를 받아 처리하는 한 산하기관 관계자는 “정부의 갑질은 잘 알려지지 않고 감히 문제를 삼을 수도 없기 때문에 정부를 상대하는 ‘을’은 정말 힘들다”며 “가끔 정부가 대기업의 갑질을 제재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고 토로했다.

○ 예산과 인사로 대학 갑질 하는 교육부

우리나라 대학들은 당근과 채찍, 즉 예산과 행·재정 제재 권한을 동시에 쥐고 있는 교육부가 ‘대학의 절대 갑’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대학 운영을 등록금과 정부 재정 지원에 의존하는 사립대는 교육부의 각종 예산 지원 사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육부는 잘 가르치는 대학(ACE) 지원 사업,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육성 사업, 대학특성화(CK) 사업 등 70∼80개 사업을 만들어 고등교육 예산을 집행한다. 각 사업마다 교육부의 틀에 맞는 평가지표를 정해놓고, 이를 잘 맞추는 대학에 돈을 준다. 대학들은 각자 특성에 맞춰 세워놓은 중장기 발전계획이라도 교육부의 지표에 맞춰 수시로 뒤집어야 한다.

최근에는 교육부가 각종 대학 지원 사업을 두고 기획재정부나 고용노동부와 신경전을 하는 과정에서 애꿎은 대학들의 등만 터진다는 불만도 크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최근 대학가에는 ‘고용부에서 예산 지원을 받은 대학은 교육부의 특정 사업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설이 파다하다”면서 “청와대는 부처 간 협업을 강조하는데 현장에서는 부처 간 눈치를 보느라 늘 피곤하다”고 말했다.

국립대는 인사 자율권마저 무너지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경북대 공주대 한국방송통신대가 임명을 제청한 총장 1순위 후보자에 대해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임명을 거부하고 있다. 해당 대학들은 1년 넘게 총장 공백 사태를 맞고 있다. 한 전직 국립대 총장은 “교육부가 2년 가까이 한국체육대의 총장 임명을 거부하다가 친박 인사를 임명한 전례를 보면 대학 발전보다는 윗선의 입맛에 신경을 쓰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 과징금 부과도, 예산 지급도 관이 내키는 대로

서울 강남구에서 척추전문병원을 운영하는 A 씨는 지난해 보건 당국으로부터 4억 원가량의 과태료를 내라는 통보를 받고 망연자실했다. 병원들은 한 달에 한 번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진료 행위를 한 만큼의 건강보험 급여를 신청한다. 심평원은 A 씨의 병원이 5년 동안 9000만 원가량을 허위 청구했다며 5배가 넘는 과태료를 부과했다.

A 씨가 간호등급제 개편에 따라 간호사 지원료가 일부 조정된 사실을 모른 채 급여를 신청해 온 것이 화근이었다. A 씨는 5년 동안 조항이 바뀐 사실에 대해 어떠한 안내나 고지도 받지 못했다. A 씨는 심평원에 “지원금을 더 타려고 허위 청구를 한 게 아니라 조항이 바뀐 줄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심평원은 “홈페이지에 매달 고시하는 내용을 알아서 잘 확인했어야 했다”고 답했다.

A 씨는 “심사 조항이 바뀌면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잘못 청구된 것은 주기적으로 알려줘야 하는데 5년이나 묵혀뒀다가 한꺼번에 과징금을 매기는 건 문제”라며 “심평원이 허위 청구 적발 실적을 위해 일부러 함정을 파고 병원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사업의 진행비가 예산에 포함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틀어쥐고 갑질을 하는 경우도 있다. B업체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연구기관의 공개입찰을 거쳐 외주사업을 따고 계약업무를 모두 이행했다. 대금을 받으려고 서류를 낼 때마다 연구기관은 글자가 몇 개 틀렸다고 서류를 반려하거나, 규정에 없는 학력증명서를 요구하며 결제를 거부했다. B업체 관계자는 “사정을 알아보니 공개입찰 제도 때문에 기존에 연구기관과 가까운 민간업체가 탈락하고 우리가 선정돼 밉보인 탓이었다”면서 “연구기관을 12번이나 찾아가 간신히 대금을 받았다”고 말했다.

○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남 탓

정부 부처의 실책으로 사회적 논란이 벌어졌을 경우 산하기관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전형적인 갑질 중 하나다. 잘 풀린 일은 부처의 치적으로 홍보하고, 잘못된 일은 산하기관이나 민간 탓으로 돌리는 수준 낮은 행태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고용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운영하는 취업포털 ‘워크넷’에 성차별적인 글들이 취업 정보라며 게재돼 논란이 벌어졌다. 취업 면접 시 당할 수 있는 가벼운 성희롱은 농담으로 받아칠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은 물론이고, “커피, 복사 같은 잔심부름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면접관 질문에는 “한 잔의 커피도 정성껏 타겠다”는 내용이 모범답안으로 제시됐다.

여성단체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고용노동부는 해당 글을 삭제하면서 “우리가 직접 운영하는 것은 아니고 산하기관이 사이트를 운영하다 벌어진 일”이라며 책임을 고용정보원에 돌려 빈축을 샀다. 이 홈페이지를 총괄 기획한 곳은 엄연히 고용부이고, 대통령 업무보고 등 고용부의 주요 사업을 소개하는 자료마다 워크넷은 단골로 들어간다. 고용부는 이 사안이 언론에 보도되자 고용정보원 직원들을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희균 foryou@donga.com·유성열 기자·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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