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샘 기자의 고양이끼고 드라마]술을 즐길 줄 아는, 혼자 마시는 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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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BS저팬 드라마 ‘와카코와 술’

술을 마시면 언제나 ‘푸슈’ 하고 감탄사를 내뱉는 와카코. 사진 출처 BS저팬 홈페이지
술을 마시면 언제나 ‘푸슈’ 하고 감탄사를 내뱉는 와카코. 사진 출처 BS저팬 홈페이지
일본 ‘먹방(먹는 방송)’ 드라마 강자로 꼽히며 시즌4까지 나온 ‘고독한 미식가’에는 딱 하나 부족한 것이 있다. 먹긴 참 잘 먹는데, 마실 줄을 모른다.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는 술을 즐기지 않는 데다 늘 외근 중 식사를 하니 술이 등장할 틈이 없다. 그런 그에게 아쉬움을 느꼈을 사람들을 위한 또 다른 먹방 강자가 등장했다. 바로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와카코와 술’이다. 올해 일본 BS저팬에서 방송됐다.

주인공 와카코(다케다 리나)는 평범한 20대 직장 여성이다. 와카코에겐 갑작스러운 야근이나 비합리적인 상사의 지시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그만의 처방전이 있다. 바로 퇴근 뒤 저녁 식사에 반주로 달게 한잔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술꾼의 혀끝을 자극하는 술과 음식의 궁합으로 가득하다. 껍질이 바삭하도록 석쇠에 구운 연어에 차가운 일본주, 기름 좔좔 흐르는 마늘교자에 시원한 맥주, 부드러운 자루두부에 따뜻하게 데운 정종…. 와카코는 행복이 절정에 달하면 “푸슈∼” 하는 감탄사를 내뱉는데 반드시 음식과 술이 조화를 이뤄야 이 감탄사를 들을 수 있다. 실제 음식점을 배경으로 실제 메뉴와 술이 등장하고, 해당 음식점의 종업원과 주방장이 ‘손님을 접대하는 자기 자신’으로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한다.

또 다른 특징은 웬만하면 혼자 마신다는 점이다. ‘술을 즐길 줄 아는 입맛을 타고난, 혼자 마시는 여자.’ 와카코를 설명하는 드라마 속 내레이션이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마시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혼자이기를 선택한다. 동료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고 남자친구가 오늘 만나자고 연락도 해온다. 하지만 와카코는 걸려오는 전화는 끊고 문자메시지에도 답하지 않는다. 와카코를 위로하는 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 혀를 감싸고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알코올의 취기와 맛있는 음식이 주는 포만감이다.

여기까지는 언뜻 주변 시선 개의치 않는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성)’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면 끊임없이 와카코를 주시하는 제3자가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단골 음식점 종업원은 “맛있게 먹는 모습이 참 귀엽던데요?”라고 주방장과 쑥덕거리고, 옆자리 남자 손님은 ‘어, 여자가 혼자? 귀여운데?’라며 와카코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와카코 역시 계속해서 다른 손님의 대화를 듣거나 주방장의 기색을 살핀다. 오로지 나와 음식만이 존재하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인 ‘고독한 미식가’와 다른 점이다. 혼자가 좋지만 주변은 신경 쓰인다. 그만큼, 아직까지도 ‘혼자인 여자’는 유별난 존재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와카코와 술#술꾼#먹방#차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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