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셰프의 비밀노트]<22>버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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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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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는 아무리 많이 써도 지나치지 않아.”

영화 ‘줄리 & 줄리아’에서 줄리가 프라이팬을 집어 들며 하는 말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은 있어도 ‘너무 많은’ 월급이란 없다. 마찬가지로 ‘버터를 적게 썼네’라고 할 수는 있어도 ‘버터를 너무 많이 썼어’라고 할 수는 없다. 버터는 많아도 좋고 많을수록 더 좋다. 왜 버터는 중용이라는 황금률을 어겨도 면죄부를 받을까? 줄리가 정확한 이유를 알려준다.

“왜냐면 버터는 너무 맛있으니까.”

근래 과자 때문에 유명해지긴 했지만, 원래 버터는 프랑스 요리에서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다. 버터 빼놓고 프랑스 요리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전설적인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책 ‘프랑스 요리 예술 마스터하기(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에 나오는 524개의 레시피를 365일 동안 모두 만들면서 줄리가 배우는 것도 그것이다. 프랑스 요리는 첫째도 버터, 둘째도 버터, 셋째도 버터라는 것.

정동현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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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는 콩기름처럼 뭘 볶을 때만 쓰는 게 아니다. 버터는 소스로도 훌륭하다. 우선 버터 한 덩이를 팬에 올리고 태우듯이 보글보글 끓인다. 처음에는 투명하고 노랬던 빛깔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탁해진다. 정신 차리고 잘 보고 있어야 한다. 천당과 지옥이 순식간에 갈린다. 버터 녹은 물이 검은색이 되기 직전, 갈색 빛이 돌 때 팬을 불에서 떼어내 식히면 그게 브라운 버터(프랑스어로는 뵈르 누아제트)다.

이 브라운 버터를 미지근하게 덥혀 샐러드에 뿌리면 그 맛이 참기름처럼 고소하고 구운 빵처럼 구수하다. 상큼한 올리브유로 만든 드레싱과는 다른 온화한 기운이다. 소스를 만들 때도 ‘몽테 오 뵈르’라고 하여 마지막에 버터를 쏙쏙 집어넣기도 한다. 느끼할 것 같다고? 아니다. 그것은 느끼한 게 아니라 맛이 진한 것이다. 따로 놀던 맛들이 하나로 합쳐지니까. 전문용어로 설명하자면 버터의 지방이 융화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맛 전체가 하나가 되고 질감은 더 부드러워진다. 반짝반짝 윤기가 돌아 보기에도 좋다.

가정집에서도 버터는 무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쇠고기를 구울 때 버터를 한 덩이 같이 녹이면 순식간에 고급 레스토랑 요리에 맞먹는 맛이 날 것이다. 카레를 끓였는데 어딘지 모르게 맛이 빈다면 버터를 넣으라. 그 진한 버터 향이 카레에 녹아나 한층 더 농밀한 맛이 살아날지니. 진정으로 아끼지 말고 써야 하는 것이 버터다.

버터는 그래서 자주 사랑을 비유할 때 쓰인다. 영화 속 줄리아의 생일파티에서 남편 폴은 건배를 제안하며 이렇게 말한다.

“줄리아, 당신은 내 빵의 버터이고 내 삶에 숨결이야.”

이런 버터를 두고 동물성 지방이라 몸에 나쁘다고 따지는 이도 있다. 사실일까? 소가 목 초지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으며 자랄 때, 그 소에서 짠 우유에는 오메가3 지방산과 오메가6 지방산이 1 대 1 비율로 있다. 오메가3 지방산은 우리가 몸에 좋다며 캡슐로 먹곤 하는 그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 소를 가둬놓은 채 공장표 옥수수 사료만 먹이는 바람에 그 비율이 1 대 1000까지 떨어졌다. 오메가6도 우리 몸에 필요한 지방산이지만 오메가3와의 비율이 무너지면 체내 염증 등 부작용을 일으킨다. 그 소에서 나온 공장표 우유로 버터를 만드니 몸에 좋을 수가 없다. 사람도 사람 나름이듯, 버터도 버터 나름이다. 그러니 버터에 대한 오해는 이제 풀어버리자. 건강 걱정에 먹지 않기에는 너무 맛있는 그 맛, 고소하고 부드러우며 진한 그 맛이란, 모든 것을 끌어안는 너르고 깊은 사랑의 맛이기 때문이다.

PS: 그리고 하나 더, ‘줄리 & 줄리아’ 말고도 버터가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 보다 극적으로 버터가 쓰였다. 제목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다. 어떻게 쓰였는지는 직접 보고 확인하시길.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3)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트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 등 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정동현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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