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도떼기시장과 삼팔따라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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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왁자지껄, 시끌벅적…. 한국영화 사상 11번째로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한 ‘국제시장’에서 관객이 처음 접하는 ‘소리’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의 치열함을 암시한다.

뒤이어 등장하는 ‘도떼기시장’. 미군 물자나 밀수품 등을 사고파는, 시끌벅적한 비정상적 시장이다. 이를 ‘도때기시장’ ‘돗대기시장’ ‘돗떼기시장’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꽤 있다. ‘물건을 도매로 떼는 시장’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도떼기’는 ‘따로따로 나누지 않고 한데 합쳐 몰아치는 일’을 의미하는 ‘도거리’의 ‘도’에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사다’는 뜻의 ‘떼다’가 더해진 말이다. 소매(小賣)가 ‘낱떼기’, 도매(都賣)가 ‘도떼기’인 것이다. 밭떼기와 차떼기 역시 밭에 있는 작물을 몽땅 사거나, 화물차 한 대분의 상품을 한꺼번에 사들이는 걸 말한다. 밭떼기와 비슷한 말로는 ‘밭뙈기’가 있다. 이때 ‘-뙈기’는 ‘얼마 되지 않는 조그마한 땅’을 나타낸다. 뜻은 전혀 다르다.

도떼기시장과 도깨비시장을 헷갈려하는 사람도 많다. 결론적으로 두 시장은 다 쓸 수 있다. 한때는 도떼기시장만을 바른말로 삼았지만 국립국어원이 최근 입말로 많이 쓰는 도깨비시장도 표준어로 삼았다. 도깨비시장은 ‘정신이 없을 정도로 요란하고 시끄러우며, 별의별 것이 다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두 시장의 어원과 말맛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의미는 비슷하지 않은가.

영화에서 주인공 덕수는 자신의 꿈을 버리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살았다. 그게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덕수처럼 38선을 넘어온 빈털터리를 일컫는 말이 있다. 바로 ‘삼팔따라지’다.

따라지는 처음엔 ‘키가 작은 사람’을 지칭했다. 그러다 ‘노름판에서 가장 작은 끗수인 한 끗을 이르던 말’로, 다시 ‘38선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확대되었다(홍윤표, 살아있는 우리말의 역사). 요즘엔 보잘것없거나 하찮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나 물건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사용한다.

이번 영화를 두고도 말이 많다. 힘들게 살아온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았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지만, 산업화 시대를 미화했다는 비판도 있다. 단언컨대, 도떼기시장 같은 왁자한 논쟁은 필요 없다. 1000만 명 이상이 본 영화라면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의 힘이 작용했다고 봐야 옳다. 영화는 영화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도떼기시장#삼팔따라지#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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