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박형준]온타케 산 분화와 세월호 참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7일 03시 00분


코멘트
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지난달 29일 일본 나가노(長野) 현 온타케(御嶽) 산의 화산 분화를 취재했을 때의 일이다. 기자는 산 정상의 시신을 옮겨와 안치해 두는 기소(木曾) 정의 옛 초등학교 건물 입구에 있었다.

병원 관계자가 나오더니 “오늘 수색은 유독가스 때문에 오후 1시경 끝났습니다. 이쪽으로 시신이 더 오지 않으니 참고하세요”라고 말했다. 함께 대기하던 내외신 기자 50여 명은 일제히 전화를 꺼내 본사에 보고하고는 자리를 떴다.

하지만 기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가 사고 발생 사흘째였으니 생존자가 산 정상 부근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때였다. ‘한시가 급한 때에 유독가스로 수색 중단이라니…. 방독면을 쓰고서라도 24시간 수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차로 약 15분 떨어진 기소 정 주민센터를 찾았다. 실종자 가족 대기소에서 만난 A 씨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유독가스가 심하다고 하는데”라고 말했다. B 씨도 눈물 가득한 눈으로 “구조대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 알고 있다. 내일은 유독가스가 줄어들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그때 기자의 머릿속에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떠올랐다. ‘그들도 수색 중단을 이해할 수 있을까?’ 도쿄(東京)로 돌아와 일본인 기자, 교수 등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온타케 산 실종자 가족들이 보여준 반응에 대해 물어봤다. 차츰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일본 고유의 ‘문화’다. 일본은 남에게 폐(메이와쿠·迷惑)를 끼치지 않으려는 문화가 강하다. ‘자기 가족을 살리고자 구조대원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없다’는 의견에 일본인들은 열이면 열 다 공감했다.

‘자연재해’라는 점도 감안됐다. 인재(人災)가 불러온 대형 사고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분노했지만 온타케 산 실종자 가족들은 화산 분화라는 자연재해에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저 슬픔을 속으로 삭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신뢰’였다. 현지에서 만난 일본인들은 구조대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었다. 굳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현장에 내려와 지휘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세월호 참사는 언론의 오보, 허술한 초동 대응, 상식을 벗어나는 선장의 탈출 등 비정상적인 상황이 줄을 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 누구도 믿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고 이틀째 박근혜 대통령이 전남 진도 사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 실종자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가지 말라”고 부탁하지 않았을까.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 연구소가 발표한 2013년 세계번영지수를 보면 한국은 26위, 일본은 21위로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신뢰성(reliability of others)과 남을 믿는 정도(trust others)가 포함돼 있는 세부 항목인 ‘사회적 자본’ 분야에서 일본은 23위이지만 한국은 66위다.

나가노 현 재해대책본부는 7명의 실종자를 남겨둔 채 17일 수색작업 종료를 결정했다. 적설과 기온 저하로 구조대원들의 2차 피해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16일 밤 나가노 현 부지사가 실종자 7명의 가족에게 일일이 전화해 수색 종료를 알리자 대부분의 가족은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6개월 이상 지났다. 실종자는 10명. 정부는 언제 ‘수색 중단’을 선언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잠수부 2명이 목숨을 잃었다. 불신의 대가는 그만큼 크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세월호 참사#도쿄#온타케 산 분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